그 시절에(~2011)/陽光燦爛的日子

미용실 이바구

張萬玉 2008. 1. 24. 08:30

머리칼이 다 빠져 딱 세 가닥 남은 사람이

미용실에 가서 춘향이 모양 얌전히 땋아달라고 했네.

부주의한 미용사 아가씨, 아 그만 그 귀하디 귀한 모발을 한올 뽑아버렸네.

어쩌겠는가, 손님은 고민을 거듭한 끝에 가르마를 얌전히 타 달라고 했네.

미용사 언니, 그만 또 한 올을 뽑아버렸네. 워낙 모근이 약했나봐.

낙담한 손님, 한숨을 내쉬며 장고 끝에 '올백' 스타일로 해달라고 주문을 하네.   

 

내가 바로 그 모양이다.

젊을 때는 인물은 볼품없으니 인간성으로 승부하겠다고 외모 가꾸기를 여우 신포도 보듯 하며 살았는데

볼품없음도 정도껏이라야지... 나이 들어가며 안 그래도 울적한 심사를 더 울적하게 해주는 몰골 때문에

요즘 들어 거울 들여다보며 땋아볼까 올백해볼까 궁리가 부쩍 많아졌다.

안 이쁜 건 상관없다. 궁리의 요체는 '어떡해야 한 살이라도 젊어뵐까'인데... 세상에 어려운 게 그거 아닌가.

 

왕년엔 파마 할 때마다 속엣머리를 왕창 쳐달라는 주문을 해야 할 정도로 넘치던 숱은 다 어디로 가고 정수리 바닥이 들여다보일 지경이니 이걸 가리려면 교묘하게 가르마의 노선을 바꾸든지 세트를 말든지 뭔가 AS를 해주지 않으면 안 되게 생겼다. 머리카락 싸움 할 때마다 챔피언 자리를 넘봤던 건강한 모발 역시 가늘고 푸시시한 노인성 모발로 변해가는 중. 유전자 덕분에 흰머리가 거의 없다는 게 불행 중 다행일까.

이십 년 넘게 무탈하게 버텨온 '수수하고 씩씩한 파마머리'가 나날이 처지는 눈시울과 어우러져 '지루하고 무력한 할머니 스타일'로 비쳐지는 걸 도무지 외면할래야 외면할 수가 없으니... 가련하구나, 소실되어가는 나의 여성호르몬이여!        

 

엊그제 한겨울 방치해둔 머리를 어떻게 좀 만져서 삼 개월 여행길에 대비하려고 미용실에 갔다가

귀밑 3센티 이상 길어본 적 없는 머리가 어깨에 닿게 치렁치렁해진 걸 보니 다시 '째끔이라도 더 젊어보이겠다'는 부질없는 욕심이 모락모락 피어나더군.

 

"길이는 자르지 말고 끝에만 웨이브 파마 해볼까요? 좀 여성스러워 보이지 않을까요?... 앞머리를 다 넘기지 말고 스트레이트로 펴서 얼굴 가까이 내려주면 좀 어려 보이지 않을까요?" 

"나이 들면 아무래도 짧은 머리가 더 어울리긴 하지요. 그래도 더 나이 먹기 전에 한번 해보시든지요."

"맞아요. 어쩌면 이게 마지막 기회일지도 모르니까 원없이...."

 

여고시절 이래 내 인생 최대로 긴 머리로 남을 08년도 폐인 스타일이 아쉬워 기념촬영.

 

미용사 언니가 가위를 내려놓고 파마약 얹힌 선반을 끌고오는데 갑자기 생각이 요동을 친다.   

아서라, 질끈 묶고 다닌다 해도 긴머리는 여행길의 애물단지 될 게 뻔한데....(샴푸도 많이 들 꺼다..^^)

 

"아니에요, 언니. 제가 외국에 삼 개월 정도 돌아다닐 건데요, 가방이 무거워서 드라이도 못 가져가고 바빠서 아마 머리에 손댈 시간도 없을 꺼예요. 그냥 보통때처럼 짧게, 감고 털기만 해도 되는 머리로...." 

"그럼 볼륨 매직 하실래요? 드라이 하면 효과가 더 좋지만 안 해도 뜨진 않으니까....."

 

이 대목에서 귀가 번쩍. 평생 스트레이트 파마라고는 해본 적 없는 반곱슬머리 아니더냐.

사실 새침하고 세련되어 보이는 스트레이트 스타일이 얼마나 해보고 싶었던가. 하지만 반곱슬머리는 롤 스트레이트를 해도 얼마 안 가 바로 본색을 드러낸다고 하길래 나와는 인연이 없나보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요즘 나오는 매직 스트레이트라는 넘은 얼마나 쎄게 당겨주는지 삼사개월은 끄떡없다네.  

 

"혹시 한 푼이라도 젊어뵐까요? 노인네 티 팍팍 내면서 여행자들 사이에서 왕따 당하긴 싫거든요."

"웨이브 파마보다야 훨씬 젊어뵈죠."

(헉, 이 대목에서 발랄한 매직파마와 축 처진 얼굴이 과연 어울릴까 싶은 걱정이 엄습)

 

 

 

결국 이렇게 됐다.

곱슬머리를 펴보고 싶었으면 한 살이라도 더 젊었을 때 했어야 했다는 아쉬움이 밀려오지만

그래도 며칠 머리 감지 말라는 미용사의 지시에 따라 사흘간 감지 않았어도 눌리고 삐져나온 데 없는 일사불란한 머리칼의 정렬상태가 나름 만족스럽다.

 

에공, 쓰고 나니 슬프구나 미용실 이바구여..

젊을 때는 젊음을 모르고~

탱글탱글 이쁨도 보이지 않았네

하지만 이제 뒤돌아보니

우린 모두 젊고 아름다웠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