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일기/중남미

여행준비 마무리 2 - 짐싸기 매듭짓기

張萬玉 2008. 2. 5. 09:23

내 블러그에 자주 드나시는 분들은 그러시겠다. "준비 얘기 좀 그만 해라, 멀미 난다...."

나도 짐 싸기가 완전히 끝난 줄 알았다. 헌데 또 짐을 뒤집을 일이 생겼네. ㅋㅋ

블러그 친구분들 중 여행준비 하다 알게 된 분들도 적지 않기에 그 분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까 시시콜콜 적는 것이니 멀미 나시는 분들은 눈 질끈 감고 패스하시길...^^

 

엊그제 저녁, 남편이 친구 부인의 부고를 듣고 장례식장에 다녀오더니 심각한 얼굴로 묻는다.

"남미쪽에 흔한 전염병이나 풍토병이 뭐가 있지?"

"예방주사 뭐뭐 맞았어? 말라리아 약 가져가나?"

"어느어느나라 도는 거야?"

"휴대폰 로밍하지?"

 

에혀, 내가 조잘조잘 얘기할 땐 어디 가 있었던 거야? 

"갑자기 왜 그러시나요? 보내는 게 이제야 실감 나?"

남편이 갑자기 관심을 보이는 데는 이유가 있었다. 친구 부인의 사인은 패혈증.... 미얀마에 다녀와서 바로 앓아누웠는데 닷새 만에 사망했다는 거다.  어떻게 걸리게 된 풍토병인지 확실치는 않지만 독충에 물렸거나 쥐로 인해 감염됐을 것으로 추정한단다. 일행은 아무 문제 없는데 혼자만 갔다.

"나 아직 홀아비될 준비 아직 안 됐거든? 혹시 모르니까 귀찮더라도 로밍 해가지고 가지."  

"삼개월이나 로밍하면 요금도 많이 나오고, 멋모르고 전화한 친구들 덤테기 쓰고, 충전기도 가져가야 하고 휴대폰 잃어버릴까봐 신경도 써야 하고....안돼안돼, 내가 메일 자주 할께."

"그럼 '오늘은 어디어디에 묵고 있음'이라고 매일 메일 보내. 무슨 사고 나면 추적이라도 가능하게."

 

그러더니 짐 싸놓은 것 좀 보자고 이리저리 헤집어보고는 일단 컴퓨터부터 턱 들어내고...

배낭을 바꾸란다. 내겐 너무 크고 가방 자체가 무겁다는 거다.

사실 나도 짐을 싸고 풀고 하면서 배낭 선택을 잘못 했다는 걸 느끼고 있었다. 꽉 채웠을 때는 몰랐는데 이것 빼고 저것 빼고 해서 8킬로 남짓 만들어놓으니 위쪽은 꿀렁꿀렁하고 옆으로 푹 퍼져 모양도 웃기지만 아랫쪽으로는 축축 처져 오래 메면 허리아프게 생겼다. 허나 쇼핑꽝도 쫀심은 있는 거다. 새 배낭 써보지도 못하고 어찌 바꾸나.

"여행 갈 때 제일 중요한 게 배낭이랑 신발인데 눈 딱 감고 다시 하나 사. 더 작고 가벼운 걸로... 괜히 갔다와서 몸져눕지 말고....가볍게 가. 무조건 가볍게.... "

이게 웬일이래요.... 이건 배낭의 문제가 아니다.

생전 관심 없어보이던 양반이 보여주는 저 극진한 마음... 덥썩 받지 않으면 나 바보지? ^^

 

결국 그 배낭은 눈독들이던 아들넘에게 넘기고 어제 남대문시장에 나가 이리저리 꼼꼼히 고른 결과 도이터 38L짜리를 새로 골랐다(깎아서 11만원 줬다). 7L나 줄었기에 짐이 다 들어갈까 걱정했는데 아래 위 주머니뿐 아니라 5L까지 확장할 수 있다는 옆주머니는 열 것도 없이 주공간에 몽땅 들어가네그려. 신기신기.

메어보니 서양애들보다 키가 작아서 그런지 허리쪽이 잘 안 맞는 느낌은 있지만 여분끈을 최대한 조르니 트레블메이트보다 훨씬 편하게 몸에 붙는다. 

 

내친김에 용산으로 갔다.

깜찍한 고진샤 컴퓨터.... 살 때는 이것저것 다 빼더라도 이것만은 들고가리라 했다. 허나 무거운 충전기도 마음에 걸리고, 여행길에서도 컴퓨터에 매달리게 되지 않을까 싶기도 하고, 페루와 볼리비아에서 불안정한 전압 때문에 컴퓨터 망가뜨린 사람 얘기도 들었고, 분실걱정에 매이기 싫다는 생각도 들고... 시간이 갈수록 가져가지 말자는 쪽으로 마음이 기운다. 허나 '일껏 사놓고 안 가져가다니.... 너 또 돈질한거지?' 하는 생각 때문에 망설이고 있던 차.... 남편이 두말없이 턱 빼내는 걸 보고는 과감하게 미련을 접었다.

컴퓨터 대신으로 채용한 넘들은 이미지 저장장치와 외로운 밤시간의 벗이 되어줄 라디오.  

인터넷에서 봐둔 적 있는 새로텍 DSR-282 케이스를 사고 하드 80메가 장착해서 11만5천원 줬다.

동전지갑 만한 sony 라디오, 3만4�원 줬다. 장거리 버스여행할 때 지긋지긋하게 들으면 귀가 좀 뚫리려나. 

생각해보니 트레블메이트 배낭(주말장터 이용가 6만4천원)과 고진샤 컴퓨터(중고 39만원), 양면 의류보관팩(16800원) 등 50여만원은 돈질 한 셈이다. 에효, 쇼핑에도 수업료가 필요한 모양이다.(배낭은 아들넘 주면 되고 컴퓨터와 의류보관팩은 이번엔 안 써도 마음에 쏙 드는 물건이니 언젠가는 쓰겠지... 위안해본다. ㅡ.ㅡ ;; )

 

기특한 소식도 있다.

무거운 병을 계속 들고다니는 것보다 샘플을 하나씩 쓰고 버리리라는 속셈으로 고속터미널 지하상가까지 가서 40여개나 사들였던 샴푸 샘플을 확 빼버렸다. 

비결은 도브 비누.

소싯적에 세숫비누로 머리를 감아본 경험 때문에 샴푸 대신 비누를 쓸 생각은 전혀 못해봤는데

잔소리쟁이 팔찌님의 권유로 한번 감아보니 샴푸로 감은 것처럼 매끄럽진 않아도 그런대로 괜찮더군.

그리고 국가별 어댑터 모양을 인터넷으로 검색하여 네 개로 된 세트 중 두 개만 골라 챙겼다. 작지 않은 케이스가 빠져나가니 주머니가 훨씬 날씬해졌다. (제대로 챙긴 게 아니라면 후회하겠지?)

 

이제 배낭을 다시 뒤집을 일은 없겠지? 주렁주렁 매달린 끈들 이리저리 얽어 깔끔하게 정리해놓고 자물쇠 채워뒀으니 다음주 월요일 아침에 들쳐메기만 하면 된다.

한 달째 거실 구석에서 자리를 지키고 있던 투박한 배낭이 날씬하고 어여쁜 배낭으로 바뀐 걸 발견하고 남편이 또 한소리 한다. "너무 좋아보여서 손타겠다. 바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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