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일기/중남미

Peru12 - Titicaca Lake2

張萬玉 2008. 7. 9. 16:08

 

아만타니 섬 선착장. 왠지 낯설지 않은 풍경이다. 혹시 우리나라의 남해가 저럴까?

한국에 돌아가면 아직 가보지 못한 그곳을 한번 꼭 가봐야겠다고 생각했다.

 

Bienvenidos a Isla Amantani!

 

뭍으로 오르니 예닐곱 명의 아만타니 주민들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한 집에 두세 명씩 짝을 지어주는데 어쩌다 보니 나만 혼자 한 집에 배정해주네... ㅜ.ㅜ        

사실 이 외딴 섬에서 1박을 하는 이유는 그저 하룻밤 이슬을 피하기 위해서라기 보다는 모종의 문화체험 내지 따뜻한 인심을 맛보기 위해서일 텐데, 인터넷에서 읽어본 아만타니 섬 체류기들이 하나같이 민박 집 주인들의 데면데면한 태도에 실망했다고들 하기에 민박에 대해 크게 기대를 두지 않았다. 그렇다면 남들처럼 짝이라도 있어야 좀 덜 뻘쭘하지 않을까?(아니지, 오히려 내 맘대로 들이대볼 수 있을지도...)

낯선 집에서의 하룻밤이 너무 길까봐 은근히 걱정하며 낯가림으로 눈도 안 맞추는 어린 여인의 뒤를 따라 가파른 언덕길을 올라갔다.     

   

 

 

그녀의 이름은 하넷(Janet). 태어나서 한 번도 섬 밖으로 나가본 적 없는 열아홉 살짜리 어린 엄마.

역시 같은 마을에서 자라난 남편과 갓 돌 지난 아들, 그리고 친정 부모님과 함께 살고 있다. 

아버지와 남편은 산에 일하러 갔다고 콧배기도 안 보여주고 친정어머니는 눈만 마주치면 외면을 하거나 슬그머니 자리를 피해버리니 말 마디라도 붙여볼 만한 게 오로지 하넷인데.... 이 어린 아줌마도  웃기는 잘 하지만 도무지 말귀를 못 알아듣는다. 처음에 소개할 때 꼬레아나라고 두 번이나 말해줬는데 자꾸 하뽀네스(일본인)냐고 물어본다든지 남편과 아들은 한국에 있다고 했건만 결혼했냐고 물어본다든지....ㅜ,.ㅜ    

 

여행사들로부터 숙박비로 얼마나 받는지 모르겠지만 손님용 방으로 두 개를 준비해두었다.

한비야씨 책을 읽고 상상했던 것과는 천양지차... 전기도 없고 화장실도 언덕 아래 멀찍이 떨어져 있지만 방 만은 여느 호스텔 못지 않다. .    

 

눈부신 커튼..... 갑자기 권태롭단 생각이 엄습했다. 오늘 일정은 이렇게 끝나는 것일까? 

 

말 한 마디 안 건네주는 야속한 친정어머니.

창문에 오색천을 걸친 왼쪽 흙벽돌집이 손님용 집이고 오른쪽과 위쪽 건물이 가족들이 사용하는 집이다.

 

척박한 산비탈을 일구어 캐낸 이 가정의 일용할 양식

 

빨간 지붕을 인 초록색 직육면체들이 화장실.

마을 전체의 화장실이 똑같은 걸 보니 아마 정부 사업으로 보급된 화장실인 듯. 

 

윗집에 배정된 이스라엘 처자들이 점심밥을 기다리고 있다. 웬지 지겨움에 치를 떨고 있는 듯한 포즈. ^^  

 

옆집 공터에서 꼬마들이 탱탱볼로 신나게 배구를 한다. 못참고 끼어들어서 땀 좀 흘려줬다. 

이 꼬마들은 하넷과는 달리 꼬레아를 안다. '풋볼! 꼬레아! 부에노!' 어찌나 감사하던지... ^^

 

대부분의 집들이 소나 말 한 마리씩은 키우고 있는 것 같았다. 섬마을 치고는 그래도 윤택한 섬 아닌가 싶다.

  

 

집 주변을 이리저리 배회하고 있는데 하넷이 점심 먹으라고 부른다.

드디어 식구들과 한자리에 앉아보겠구나 하고 신나게 달려갔더니 내 방 맞은편 건물 1층에 마련된 손님용 식당에 달랑 내 밥만 차려놨다. 왜 따로 차렸냐, 네 밥 가져와서 같이 먹자 했더니 이미 먹었다네. 어디서 읽은 얘기가 생각나 "저녁에는 같이 상 차려주지 않으면 안 먹겠다"고 투정을 부렸더니 또 웃기만 한다.     

왼쪽은 야채스프... 실란드로 향이 너무 강한 것만 빼면 걸죽한 게 아주 맛있었다. 감자 위에 있는 게 뭐였더라.. 치즈였나?

 

밥 먹고 나니 제대로 후식까지 챙겨준다. 무냐차라고 하던데....

길거리에 지천으로 나 있는 풀을 한 잎 따서 물에 띄웠다. 아찔할 정도로 진한 박하향이다.  

 

그릇을 치우러온 하넷을 따라 '그들의 영역'으로 들어가봤다.

선반에 얹어놓은 그릇 몇 개와 화덕이 부엌살림의 전부.... 상수도도 하수도도 음식 썰 만한 곳도 없다.

가진 게 없으니 치우고 말 것도 없겠다. 

일생을 행주질 걸레질에 목매는 한국 아줌마들을 보면 어리석다 하지 않을까? 

 

점심식사 후 센트로 광장으로 모이라고 했는데 이번엔 하넷 친정어머니가 길잡이로 나섰다.

역시 눈 한 번 안 맞추고 잰걸음으로 앞서간다.  내 또래 같은데, 말이라도 한번 붙여보고 싶지만....ㅜ.ㅜ

  

그래도 잘 따라오는지 가끔 뒤돌아봐주니 고마울 따름.

 

 

 

호수가 내려다보이는 전망 좋은 곳에 자리잡은 센트로.

교육, 종교활동, 정치활동, 축제..... 마을의 모든 중요한 활동이 이곳에서 이루어진다.  

 

마을의 유일한 상점. 오늘밤 이 곳에서 주민들이 우리를 위해 파티를 열어준다고 한다. 

 

아이들이 팔찌와 손가락 인형들을 정리하고 있다. 곧 장사하러 나설 모양.  

 

 광장 옆 공설운동장

 

우리나라 농촌이나 다를 바 없는 정다운 모습

 

이제 섬 꼭대기를 향해 올라가기 시작한다. 해발 3800미터에서 더 올라가고 있으니 천천히 걸으란다.

사진 중앙에 있는 아치형 돌기둥은 마을 경계 표시. 이 작은 섬에 여덟 부족이 살고 있다고 한다.  

 

 

 

 

 

허리가 꼬부라지도록 일을 해야 입에 풀칠이나마 할 수 있는 곳은 절대로 낙원이 아니다.

예전에 '오래된 미래'를 읽고 제일 먼저 떠올랐던 생각... '저자는 농사 짓는 사람이 아니잖아...'

 

  

등짐도 안 지고 빈 몸으로 올라와서는 힘들다고 주저앉다니....

 

휴~ 다 왔다!   

 

때맞춰 노을이 기울기 시작한다.

  

또 카메라 탓을 하게 만드는 압도적인 절경....

  

띠띠까까 투어 최고의 순간이다.

점심 먹을 때만 해도 이렇게 하루가 끝나는구나.... 싶은 심정이었는데 나의 하루는 대단한 절정을 품속 깊이 감추고 있었다. 살아가는 일도 속단하지 말고 꾸준히 가볼 필요가 있다. 

 

 

다시 센트로로 내려왔을 때 마을은 어느새 어둠 속으로 묻혔다. 아기를 업은 하넷이 날 데리러 왔다.

손전등도 안 가지고 나와 발끝 감각으로 더듬더듬 길을 찾아 오느라고 거의 한 시간 가까이 걸렸다. 이렇게 무겁게 어둠이 깔렸는데 파티한다고 또 나오라니 저 길을 어떻게 또 더듬어갈꼬?

 

방으로 돌아오니 깜깜굴속이다. 손전등 꺼내기도 귀찮아 침대에 널부러져 있는데 하넷이 성냥과 초를 갖다주며 밥 먹으러 오란다.

저녁상은 자기네 부엌에 차려놓긴 했는데 또 독상을 봐놨네.. 허탈! 하긴 낯선 사람과 밥 먹기가 편친 않겠지. 

저녁 메뉴는 토마토 소스를 얹은 쌀밥이다. 여기서 쌀농사도 짓냐고 물어보니 푸노에서 사온 거란다.

부엌 한켠에 깔아놓은 담요 위에서 아기가 팔다리를 버둥대며 혼자 놀고 있길래 아기체조를 시켜주니 까르륵 까르륵 넘어간다. 10개월이면 이가 네 개는 나야 하는데 볼때기는 빵빵한 녀석이 아직 이가 하나도 없다. 젖도 먹고 밥도 먹는다지만 칼슘 섭취가 적으니 그렇겠지... (과테말라에서 젖병에 콜라를 넣어 먹이는 엄마를 봤다. ㅜ.ㅜ)    

 

 

촛불과 놀다

 

피에스타 가자고 문을 두드리길래 나가보니 어둠 속에 서 있던 친정어머니가 내게 뭔가를 푹 뒤집어씌운다. 피에스타에 가려면 꼭 코스튬을 차려입어야 한단다. 갑자기 뒤집어씌우는 바람에 입고 있던 자켓 위로 블라우스를 입은 형국이 됐다. 

집을 나서니 위 아래 옆집으로부터 반딧불이처럼 반짝이는 손전등들이 쏟아져나와 우리와 합류한다. 기다란 두건을 두르고 별빛 아래 줄지어 걷고 있으니 마치 순례자 행렬 속에 있는 기분이다.    

 

색종이 약간 둘렀을 뿐인데.... ^^  파티장으로 변신한 마을의 구멍가게.   

 

'우리들은 어린 음악대, 동네 안에 제일가지요..' ^^

 

연주야 어떻든 신명은 노는 사람들의 몫.

 

이스라엘 애들이 제일 잘 논다. 페루 음악에 맞춰 이스라엘 춤을.... ^^

집단가무가 생활화되어 그런 것 같다.   

 

무뚝뚝해 보이는 이 동네 아줌마들도 춤판에서만은 절대 안 빠진다. 지치지도 않고 두 시간 내리..... 

 

야옹~ 아침이다, 세수하자!

 

세면대가 따로 없고 길가에 수도꼭지만 빼놓아, 양치를 하고 뱉으니 초록색 풀밭에 치약자국이 허옇게 남아 어찌나 민망하던지. 여기에 비누거품까지 합세시켰다간 씻어내는 일이 보통 아니겠다. 물이 귀한 섬마을에서 돌 맞을 일이지. 마침 고맙게도 고양이란 녀석이 시범을 보여주더군. 

 

하넷도 꼬마 아놀드도 이제 겨우 낯을 익혀 방긋방긋 웃어주는데.... 정들자 이별이구나.

 

탐 & 주디 커플은 민박하는 집에 선물하려고 식용유와 설탕을 준비해왔던데 미처 생각 못하고 빈손으로 왔기에 그냥 떠나면 두고두고 마음이 불편할 것 같은데... 돈을 준다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다. 섬 사람들 버려놓는다는 이유있는 반대도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사람들은 관광객들이 다녀가면 팁이 생긴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고 그 팁은 이들의 요긴한 생계수단일 텐데...

20솔을 챙겨놓고 한참을 망설이다 에라 모르겠다 슬쩍 주머니에 찔러줬는데

아이고, 안 줬으면 울 뻔했다. 그런 건 호랑이 담배먹던 시절에나 타당한 걱정이었다.      

 

여기는 아만타니 섬에서 1시간 거리에 있는 타킬레 섬.

 

아만타니 섬과 집들도 비슷하고

 

섬을 돌아 마을 광장으로 가는 길도 비슷하다. 

 

다른점이 있다면 거의 대부분 사람들이 길을 걸으며 실을 감는다는 점이다.

 

타킬레 섬은 아만타니보다도 규모가 작지만 티티카카 호수에 있는 섬들 중 행정적인 중심 역할을 하는 중요한 섬이라고 한다. 또 남자들이 뜨게질하는 섬으로 유명한데, 정말 걸어다니며 뜨게질하는 남자들을 곳곳에서 볼 수 있다. 능숙한 손길로 모자도 짜고 스카프도 짜고 스웨터도 짠다.

 

별로 중요하진 않지만 마을사람들이 중요한 것처럼 설명하는 정보 하나. 남자들에게는 축제 때 입는 판초 외에 전통복장이 따로 없지만 그래도 털모자는 꼭 쓰고 다니는데 미혼이면 흰색, 기혼이면 색갈이 있는 모자를 쓴다고 한다. 또 허리에 차고 다니는 코카잎 주머니를 보면 미혼인지 기혼인지를 구별할 수 있는데 뒤로 차면 싱글이고 옆으로 차면 임자 있는 몸이란다.       

 

센트로 입구

 

호수가 내려다 보이는 전망 좋은 센트로 역시 아만타니와 똑같다.

 

 

Tom & Judy & Corry 

 

섬 한 바퀴 돌고 점심먹고.... 심심하게 세 시간 정도 머물다 500계단을 내려와 돌아오는 보트를 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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