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전 11시. 9인승 지프가 2박3일의 여정을 시작했다.
지붕 꼭대기에는 프로판 개스통과 식수, 부식을 담은 상자와 여섯 개 배낭이 실렸고
앞자리에는 운전사 겸 가이드 아저씨와 요리사 아주머니가 앉았고
뒷줄에는 미국 아가씨 지나샤(사진 왼쪽), 이탈리아 총각 파비오(아랫사진), 그리고 내가 앉았고
그 뒷줄에는 캐나다에서 온 커플 스캇과 캣(사진 오른쪽 두 사람), 벨기에에서 온 최연소(20세) 멤버 팀이 앉았다. 서로 소개를 한 뒤 뒷줄부터 차례로 이름을 불러보니 '스캇, 캣, 팀, 킴...' 아주 리드미컬하다. ㅎㅎ
파비오는 나를 푸노의 한 레스토랑에서 봤다고 하고 지나샤와 팀은 라파즈에서 우유니 오는 버스에서 나랑 함께 왔다고 하고 스캇과 캣은 나와 같은 숙소에 있었다고 한다. 헌데 사람 얼굴 기억하는 데 둘째가라면 서러워하는 게 내가 어째서 아무도 모르겠는지.... 확실히 근래 내 맴이 버석버석 말라버린 게 분명타. 건조지대를 여행하다보니 그런가?
운전기사 겸 가이드 아저씨는 경력 8년, 요리사 아줌마는 경력 3년차란다. 아저씨는 파비오보다 겨우 세 살 많고 아줌마는 나보다 세 살이나 어리다. 건조하고 자외선이 강한 동네에 살다 보니 확실히 겉늙어보이지만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그들의 원래 나이가 제대로 보이기 시작한다.
투어 차량은 마을에서 2킬로 정도 떨어진 '기차 무덤'에서 잠시 멈춘다.
그리고는 얼마간 기찻길과 함께 달리다가
'소금박물관'이라는 곳에서 잠시 멈춘다.
말이 박물관이지 구멍가게나 다름없다.
'박물관' 앞에서 팔고 있는 저 하얀 공예품들은 모두 소금으로 만들어진 것들이다.
아직 소금사막이 시작되지도 않았는데 곳곳에 소금이 곳곳에 산을 이루고 있다.
조금 달리니 드디어 하얀 사막....
사막은 멋지지만 내 솜씨만 가지고는 단조로운 사진밖에 안 나온다.
사람이나 토끼나... 뭐라도 어른거려줘야 멋진 배경이 더 빛난다. 우리 인생도 그럴 꺼다.
여기는 소금 호텔이란다. 투어 일정에 따라 이곳에 묵어가기도 한단다.
내부 사진을 찍으려면 매점에서 뭐라도 사라고 하기에... 막대사탕 하나 사서 입에 물고 찍었다.
벽도 테이블, 의자, 침대 등 가구도 모두 소금벽돌로 만들어졌다.
관광 컨셉 때문에가 아니라.... 이 동네의 합당하고도 유일한 건축재료이기 때문이다.
우기에 오면 소금이 녹아 거울처럼 하늘을 비춰주는... 이런 환상적인 사진을 찍을 수 있다는데....
출처 : http://paper.cyworld.nate.com/june57th/1210662/
지금은 건기라 우리의 소금호수는 겨우 이 정도... ㅜ.ㅜ
다른 팀에서 온 아가씨들이 포즈를 취하길래 덩달아 한장 찍었다.
(물어보진 않았지만 기분 내는 데 일가견이 있는 애들은 이스라엘 애들이다. ㅎㅎ)
비교된다... ㅜ.ㅜ
소금호텔 마당에서 점심준비를 하려나 했더니 조금 더 가잔다. 도착한 곳은 '물고기 섬'.
내가 이름을 붙였다면 '고래섬'이라고 할 것 같은데.....
'섬'을 따라 걷고 있자니 정말 '해안가'를 걷는 기분이다.
이제는 요리사 아줌마의 활약이 빛을 발할 시간...
우리더러 앞산에 가서 잠시 놀다오라고 해놓고 요리사 아줌마 손길이 바쁘다.
좀 도와주겠다고 했더니 손사래를 치며 얼씬도 못하게 한다.
영화에서나 나옴직한 선인장과 바위로 뒤덮인 거친 산을 땡볕을 맞으며 굳이 올라가는 일행들.
오히려 바라보는 게 더 멋지지 않나?
나는 산의 발치에서 특이식물 구경만 했다. 상상력이 풍부한 사람이라면 이 덤불 하나만 가지고도 단편소설 하나 써내려갈지 모를 일.
예상대로 땡볕에 항복한 애들이 금세 돌아와 식탁 벌여놓고 '밥주세요~' 합창한다.
20분도 채 안 걸려 뚝딱 차려낸 진수성찬.
스테이크는 야마 고기다. 거부감을 누르고 한 조각 썰어보니.... 쇠고기도 그렇게 연한 쇠고기가 없다.
밥 먹고 한 시간 동안 맘대로 놀란다.
허허벌판 사막에서 할 만한 놀이는 길고 긴 '섬'을 따라 한 바퀴 도는 것.... 그리고 그림자놀이. ^^
멀리서 보면 멋진 설원 같지만 가까이서 보면 말라 비틀어지다 못해 처참하게 갈라진 불모지다.
길 잃고 헤메다 말라죽은 새. 어쩌면 우기에 물에 빠져서 헤어나오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멋지다, 파비오! (아마 이때부터 파비오에게 꽂히기 시작한 것 같은데.... ^^)
이야기하며 걷다 보니 일행들은 다 어디로 사라지고 사막에 둘만 남았다. 이탈리아인이지만 파리에서 컴퓨터 회사에 다니고 있는 파비오는 한국여자를 사귀어보고 싶단다. 처음 파리에 와서 집을 구할 때 친구가 바빠 그의 애인이 대신 아파트를 구해줬는데 그녀가 한국여자였다고.... 너무나 상냥하고 친절해서 사귀고 싶었지만 자기 친구의 애인이라 그랬다기보다는 그녀가 한국여자라서 데이트 신청을 포기했단다. 한국여자들은 오로지 애인에게 충실하고 절대 한눈 안 판다고 알고 있기 때문에 분명히 거절당할 거라고 생각했다나. (ㅎㅎ 그거 환상이거든?)
말수가 적은 줄 알았는데 얘기가 조곤조곤 재밌고 진솔하다. 이탈리아 보수적인 집안의 육남매 속에서 자란 얘기, 인구 천이백 밖에 안 되어 결국은 이웃마을과 합쳐졌지만 여느 큰 도시와도 바꿀 수 없는 가치를 가졌다는 아름다운 고향마을 얘기, 고등학교 때 기타에 미쳤던 얘기.... 그대로 받아적으면 성장소설 한 권 나올 법한 아름다운 얘기들은 이 수다쟁이 아줌마가 입 다물고 귀 쫑끗 세우게 만들기 충분했다. 땡볕 아래 한 시간 내내... 걷는지도 모르고 걸었다니까.. ^^
길도 없는 하얀 평원을 이리저리 가로지르며 다시 세 시간.
오늘밤 묵을 '호텔'에 도착하니 어느새 해가 기울고 있었다. (사진은 별관..^^)
이 호텔도 모래바닥에 모래벽돌로 집을 짓고 모래벽돌로 만든 가구를 놓은 또다른 '소금호텔'이다.
어둡기 전에 식사준비를 해야 한다고 요리사 아줌마의 손길이 바쁘다.
대체 어떻게 끓인 스프일까? 남의살 한 점도 안 넣었지만 진하고 풍부한.... 쉽게 흉내낼 수 없는 맛이다.
혼자 다니다보니 식당에서 밥을 시키려면 양이 감당이 안 되어 야채스프에 빵만 시키는 경우가 많았고, 그러다 보니 스프나 샐러드가 주식이 되다시피 했는데.... 그중 볼리비아 스프, 그중 우유니 사막에서 먹었던 이 스프맛이 단연 최고였다. (물론 내 입맛의 경우 그렇다는 얘기)
이 호텔에 조막만한 강생이가 한 마리 있었다. 기운이 펄펄 넘쳐 천방지축 뛰어다니며 손님들을 괴롭히는데 도무지 불감당이다. 저렇게 잡히는 것도 순간, 앙칼진 비명과 함께 쥐씨알 만한 이빨로 물어뜯으며 번개같이 탈출해서는 또 미친듯이 날뛴다.
그날밤 너무 무리를 했나? 아니면 주인이 밤새 개과천선 프로그램을 실시한 것일까?
이튿날 아침에 본 그 녀석은 헝클어진 머리에 완전히 지친 모습이었다.
탈진한 것처럼 꼼짝도 안 한다. 요 이쁜넘, 내 배낭 안에 담쑥 넣어 들고가버릴까?
밤이 오고
아침이 오고
우리는 이틀째 일정을 시작한다.
오늘은 풍화작용으로 만들어진 기이한 지형을 지나 플라밍고가 서식하는 호수로 간다. 흰 사막은 어제로 끝이란다. 시간 없는 사람은 일일투어만 해도 된다는 얘기가 그 때문이었다.
남들은 긴 다리, 긴 목이 우아하다고 하는데 내겐 징그러울 뿐이다.
남들은 조금이라도 더 가까이 가서 찍으려고 야단들인데 나는 가까이 올까봐 겁이 났다. ㅜ.ㅜ
사람이 다가가는 기척만 있어도 잽싸게 날아가버리는 녀석들.. 그래도 운좋게 날개 편 놈 하나는 잡았당.
투르판의 화염산이 생각났다.
바람의 여신 作 '고독한 버섯'
이끼야, 너도 참 구차하게 사는구나. 이사갈 형편이 못 됐니?
까꿍!!
라구나 꼴롤라다(오색호라고 불러야 하나?) 앞에 세워진 호텔에 체크인.
여기야말로 전기도 물도 없고 뼛속까지 얼려버리는 추위로 악명높은 곳이다.
먹을 게 많은 동네인가 보다. 이 동네 물새들은 동그랗게 살이 올랐다. 가까이 가도 꿈쩍 안 한다.
저녁식사 준비 할 동안 호수 건너편 전망대가 있는 돌산에 가보기로 했다.
조물주의 미적 감각은 다채롭기도 하다.
갯벌만 그리는 내 화가 친구를 데려왔어야 하는 건데....
영하에 가까운 체감온도에 거센 바람까지 가세하여 이를 악물고 걷게 만든다. 돌아오는 길이 왜 그리 멀던지..
밥 빨리 주세요~~~
라파즈에서 작은 기타를 산 파비오가 길을 들인다며 어제에 이어 오늘도 콘서트를 열었다.
에릭 클랩튼의 주옥같은 곡들이 줄줄 흘러나온다. 넋놓고 듣다 좋은 곡들은 다 놓쳤다.
이 곡은 처음 듣는 곡인데... 혹시 곡목 아시는 분?
열 시가 되니 전등이 나가 일동 강제취침 모드로 들어간다. 하긴, 내일은 새벽 다섯 시에 출발하여 간헐천(게이저)을 보고 사막 한 가운데 있는 온천을 한 다음에 아침을 먹는다니 열 시 취침도 억울하진 않다.
내일 새벽에도 불이 없다니 눈만 뜨면 나갈 수 있게끔 짐도 다 꾸려놓고 수영복도 아예 속에 챙겨 입고 취침준비 완료. 여행사에서 5달러에 빌린 침낭 속에 들어가고 위에 담요도 두 장이나 덮었는데도 춥다. 밤새 추웠다.
이튿날 새벽 네 시 반, 가이드가 문을 두드린다. 괴롭지만 거부할 수 없는 저 외침, "아미고스, 바모스!!"
손전등에 의지해서 화장실(세수하러 간 거 절대 아님..)에 들렀다가 비몽사몽 지프에 오른다.
별빛을 보며 한 시간쯤 달렸다.
살아 있는 지구의 입김.... 신기한 기분은 잠깐, 금세 아찔한 기분이 엄습하더군.
간헐천은 뜨거운 물줄기가 되어 사막을 이리저리 적신다.
와, 온천이다!!
허허벌판 사막에 달랑 온천 하나뿐.... 탈의실도 따로 없다. 입는 것은 미리 입고 와서 문제가 없었지만 온천에서 나와 옷을 갈아입을 때.. 아무데서나 훌렁훌렁 잘 벗고 입는 서양애들과는 달리 원치 않아도 부끄럼이 몸에 배어버린 나는 겉옷을 걸친 속에서 잘 벗겨지지도 않는 속옷을 벗느라고 쇼를 했다. 애들은 그 쇼를 더 재밌어하더군. 사막에서 어디 숨을 데도 없고... 미티미티!!
대기는 차갑고 물은 뜨끈하고 태양은 떠오르고.... 사막에서 온천이라니, 세상에 이런 호강이!!
엊저녁에 미리 구웠다는 카스테라(아줌마 센스쟁이!)와 과일, 요쿠르트로 아침을 먹고 마지막 관광지인 라구나 베르데(초록 연못)으로 갔다. 이곳이 흰 사막과 더불어 우유니 투어의 백미로 꼽힌다는데, 건기라 그런지 멋진 풍경을 이미 너무 많이 봐서 그런지 감흥이 별로였다. 고생마저도 즐겁게 만들었던 화기애애 엽기발랄 팀원들과 헤어질 시간이 가까웠다는 사실이 아쉽기만 했다.
칠레 가는 길.
칠레 쪽으로 내려갈 파비오와 아르헨티나 살타로 가려는 나만 칠레 국경에서 내리고 일행은 다시 우유니로 돌아갔다. 돌아가는 길을 둘러싸고 아마 돌아가는 길이 좀 시끄러울 듯해서 걱정이다.
(이 이야기는 길어지니 다음 포스트에서...).
* 이번주는 서울을 떠나 있을 것 같습니다. 한동안 새 글이 없더라도 이해해주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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