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비사단에 처음 입영하던 날.
머리를 박박 깎은 우리는 사단 정문 바로 안 공터에 줄을 맞추어 쪼그리고 앉았다.
철조망 밖에서는 부모형제나 친구들이 안타까운 눈빛으로 쳐다보고 있었다.
조교들이 존댓말로 “자, 이제 그만 들어갑시다”하고 우리들을 일으켜 세운 다음 점잖게 구령을 붙여가며 데리고 갔다.
길이 기역자로 꼬부라지는 곳, 거기서부터는 철조망 밖 가족들의 시선에서 벗어나게 된다.
대열이 그 길목을 돌아서자마자 “이 새끼들, 여기에 구경왔어?”하는 소리와 함께 뒤에서 어슬렁거리던 두어명에게 발길질이 날아왔다.
오리걸음을 하며 우리는 조교의 선창에 따라 일제히 “내가 왜 이럴까”를 외쳐대기 시작했다.
그렇게 시작된 신병교육은 스스로의 처지를 돌아볼 겨를조차 주지 않았다.
아침에 눈을 뜨는 순간이 가장 괴로웠다.
의자와 익숙한 책꽂이 앞에서가 아닌, 낯선 관물대와 겁에 질린 표정의 신병들 가운데에서 눈을 뜬다는 사실이 오랫동안 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탈영자가 생긴 것은 입영 후 열흘 정도가 지나서였을 것이다.
내무반장이 개새끼를 연발하며 정신 없이 왔다 갔다 할 때에도 나는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모르고 있었다.
나중에야 우리 소대의 훈련병 한 명이 탈영하였다는 것을 누가 귀띔해 주었다.
나와 같은 편 침상의 중앙 조금 오른쪽에 있던 친구였다.
나는 왼쪽 끝에 있었기 때문에 그의 얼굴을 볼 기회가 별로 없었다.
조그마한 체구에 말수가 적었다고 했다.
밤 3-4시 경에 내무반을 빠져나갔고 막사에서 가까운 야산 등성이의 담장을 넘어 탈영한 것으로 추정되었다.
그가 빠져나간 빈 관물대를 보는 것은 섬뜩한 느낌을 주었다.
내가 잠 든 사이, 너댓 사람 건너편에서 그는 몰래 일어났을 것이다.
그리고 주위를 살핀 다음 불침번이 조는 틈을 타서 문을 열고 야산의 어둠 속으로 사라졌을 것이다.
우리 모두에게 있어서 탈영은 언감생심이었다.
물론 자유롭게 선택하라고 한다면 막사에 남아 있을 사람은 아무도 없었을 것이다.
그래도 우리는 좌로 구르라면 좌로 구르고 우로 구르라면 우로 굴러가며 그 곳에 남아 있었다.
주어진 질서가 무서워서든 국방의 의무가 신성하여서든 간에 우리는 남아 있는데 그는 달아난 것이다.
탈영을 결심한 그의 마음이 종내 헤아려지지 않았다.
달아난 그는 지금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그 의문은 오래 가지 않았다.
그 무덥던 여름이 다 가고 교육도 막바지에 이른 어느 날, 그는 비참하게 묶인 모습으로 우리 앞에 다시 나타났다.
포승에 묶인 인간을 본 것은 그 때가 처음이었다.
짐승과 다를 바가 없었다.
포승은 그의 팔을 감고 몸통을 감은 다음 다시 양손을 뒷짐지어 묶어 놓았다.
구워 놓은 듯한 새까만 몰골 때문에 우리는 고개를 떨군 그의 얼굴에서 표정을 읽어낼 수 없었다.
전시(?)가 끝나자 그는 두 명의 헌병에게 끌려 다시 사단 본부가 있는 언덕길 쪽으로 비칠비칠 사라졌다.
세월이 가고 그 탈영 사건은 나의 뇌리에 특별한 기억으로 남았다.
아마 점점 상징적인 의미를 가지게 되었다고 해야 할 것 같다.
상징으로서의 그것은 모든 일탈(逸脫)의 가장 강렬하고 극적인 모습이었다.
체제의 한 부분이 고스란히 증발해 버린다는 것은 체제에 대한 그 어떤 도전이나 저항보다 훨씬 극적인 데가 있다.
저항은 체제의 내용과 싸우면서도 체제의 존재는 시인하지만 증발은 체재의 존재 자체를 무시하기 때문이다.
신창원의 탈주사건이 발생하였을 때 국민들이 보인 반응을 그래서 나는 재빨리 이해할 수 있었다.
그 반응을 곤혹스럽게 보는 시각이야말로 우스꽝스러운 것이다.
신창원이 저지른 원래의 범죄가 얼마나 흉악한 것이었는지를 알려주어서 국민들의 바른 인식을 유도하려 한 일각의 시도는 전적으로 무력했다.
그가 어떤 범죄를 저질렀는지 국민들은 관심이 없었다.
그의 탈주는 이미 하나의 사건을 넘어 상징이나 극(劇)이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일탈의 극단적인 양상으로서 탈주는 극이 될 여러 소지를 지니고 있다.
그것은 모든 인간의 존재 안에 깃 든 절대적 자유에의 꿈을 충동한다.
그 꿈을 충동하는 한, 탈주가 가진 구체적인 결함이나 불합리성은 별로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 점에서 영화 「빠삐용」은 탈주 영화의 전범이라 할 수 있다.
그것은 우리 속에 잠든 자유에의 꿈을 자극하는, 극으로서의 모든 것을 갖추고 있다.
영화는 빠삐용이 절해고도에서 탈출하는 것으로 끝난다.
약간의 후일담은 자막인가 내레이션으로 처리되었던 것 같다.
실화로 돌아가면 빠삐용은 탈출하여 베네주엘라에 정착한 다음 광산 노동자, 직업 노름꾼, 은행털이, 요리사, 전당포털이 등 밑바닥 인생을 살았을 뿐이다.
영화는 거기까지는 취급하지 않는다.
취급할 필요도 없고 취급해 보아야 극을 훼손할 뿐이다.
추구되는 동안 자유는 살아 있는 무엇이지만 실현된 자유는 이미 자유의 속성을 배신하여 무료한 일상으로 주저앉고 마는 것이 보통이기 때문이다.
이 문제는 모든 일탈 행위의 성격 규정에 이어진다.
극의 구조 안에 들어온 일탈행위는 한 단계 더 높은 차원에서 우리가 처한 상황의 의미를 반조해 준다.
반조된 상황은 우리를 여전히 조건짓는 것이면서도 우리로 하여금 그 조건을 넘어설 수 있게 해준다.
이 점이 중요하다.
군 복무기간 내내 그의 탈영은 나의 복무 내용에 작용하고 있었다.
영화 빠삐용은 그 영화를 본 사람들의 삶의 내용에 작용한다.
그것은 명백히 자유의 작용이다.
우리가 우리의 삶을 대하는 방식은 본질적으로 극적(劇的)이다.
극은 결코 유한(有閑)행위가 아니다.
즉자체로서의 삶은 극이 아닌지도 모르지만 인간은 삶을 극으로 대한다.
극 이전의 실제에 있어서 그 탈영병은 불행했을 뿐이다.
담을 넘어간 그는 결국 비참하게 묶인 모습으로 돌아왔다.
빠삐용은 단지 광산 노동자나 은행털이가 되었을 뿐이다.
신창원도 붙잡혀 더 긴 복역을 하고 있다.
실제란 그렇게 끝없이 이어지지만 그 실제를 인식하는 인간의 극적 사유구조는 거기에 단락을 설정하고 그 단락에서 극적 의미를 건져 올린다.
마찬가지로 모든 옛날 이야기는 “잘 살았단다”로 끝나고 있다.
그러나 정말로 잘 살았는지 어쨌는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다.
이도령과 재회한 춘향이는 이도령의 여전한 바람기 때문에 매우 불행한 여생을 살았을지도 모른다.
홍길동은 율도국을 건설하지만 1년도 못가서 조선의 정벌 대상이 되어 비참한 최후를 맞았을 수도 있다.
그런 실제에 단락을 짓고 극적 구성을 통해 의미를 건져올리는 것은 온전히 인간의 극적 사물 인식에서 오는 것이다.
범죄자나 끝없이 인생을 전전(轉轉)하는 사람이나 인식능력이 단순한 청소년들은 삶과 인식의 이러한 관계원리를 잘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사회의 정해진 규범을 파괴하는 범죄행위에 ― 매우 우회적인 의미부여에 의한 것이지만 ― 자유의 작용이 개재해 있다는 것은 부인하기 어려울 것이다.
주어진 현상에 만족하지 못하여 삶을 전전하는 사람에게 있어서도 그 변화의 단층에는 역시 자유가 작용하고 있다.
청소년들이 간섭과 몰이해와 통제를 벗어나기 위해 흔히 선택하는 가출에 있어도 마찬가지다.
그 모든 경우에 있어서 실제와 인식은 서로 조화되지 못하고 서로 충돌한다.
현실은 자유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일탈을 부추긴다.
일탈을 통하여 자유는 현실에 폭력적으로 작용하며 현실을 제거하려 한다.
그러나 그 결과가 자유냐 하면 대부분 그렇지가 못하다.
이를테면 억압적 현실에서 벗어나기 위해 가출을 선택한 아이들은 동시에 메마르고 황량한 길거리에서 오갈 곳 없는 새 현실을 맞게 되는 것이다.
그 탈영병이나 빠삐용이나 신창원이 다 마찬가지였다.
현실은 자유와 조화하여야 하고 자유는 현실과 조화하여야 한다.
삼류 철학의 진부한 명제처럼 들리지만 생각하면 피할 수 없는 결론이다.
자유와 조화된 현실은 명분을 지니고 도그마가 되지 않는다.
그리고 인내할 줄 안다.
당연히 자유와 조화되지 않은 현실은 도그마가 되기 쉽고 명분 없이 군림한다.
인내하지도 않고 충동적이며 자기파괴적이다.
현실과 조화된 자유는 현실의 모습 뒤에 자신을 숨길 줄 안다.
숨어 있는 자유는 그래서 현실을 부드럽게 만들고 현실을 반쯤 투명하게 만든다.
그러나 현실과 조화되지 못한 자유는 스스로를 드러내기 위해 불투명한 현실에 결극을 내고 뛰쳐나간다.
그런 과정에서 자유는 팽팽한 자의식을 갖기도 하지만 스스로가 파괴한 현실이 무너지면 그 자신도 흐지부지 소산되고 마는 것이 보통이다.
인간이 땅에 발을 붙이고 사는 한, 그리고 육(肉)의 조건에서 벗어날 수 없는 한, 인간은 일탈의 꿈에서도 벗어날 수 없다.
그러나 일탈의 꿈은 마치 의원이 떨리는 손으로 미세하게 그 양을 조절하는 극약(劇藥)과도 같은 것이다.
일탈뿐만 아니라 일탈의 본질을 이루는 자유 자체가 그러하다.
그것은 고귀하고 소중한 것이지만 동시에 매우 위험한 것이기도 하다.
생과 사의 길이 그 안에 함께 가로놓여 있고 한 치만 어긋나도 그 길은 뒤바뀌고 말기 때문이다.
인생을 산다는 것은 바로 그 극약의 처방을 터득하는 일이고 그것이 인간의 존엄과 아름다움에로 차질 없이 연결되어 있다는, 저 가물가물한 세로(細路)를 찾아가는 일이다.
인간은 현실 속에서 살지만 동시에 꿈 속에서 산다.
그래서 일탈은 어느 누구에게도 결코 무관한 문제가 아니다.
온통 물화(物化) 일변도의 무식한 세상을 살고 있지만 우리 중 가장 여린 인간도 그 질서를 배반하는 매서운 꿈을 간직하고 있다는 말이다.
그 점을 생각하면 저 모든 인생이 공연히 눈물겨워지고 또 정겨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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