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오스가 한가하다고 듣긴 했지만 그래도 한 나라의 수도인데....이렇게까지 한가할 줄은 몰랐다.
관공소와 여행자 거리, 조금 떨어진 곳에 위치한 고급 주택가를 빼면 도심은 끝, 버스터미널 부근의 재래시장과 마켓 말고는 변변한 상권도 없다. 도심(!)에서 걸어서 30분도 채 안 걸려 바로 한가로운 농촌이다.
Budda's Park
슬슬 걸어 딸랏사오 버스터미널에 가보니 오히려 여기가 도심보다 쪼끔 더 붐빈다.
다른 도시에서 웬만한 물건 사려면 비엔티엔까지 와야 한다더니, 그래서 그런가보다.
나선 김에 Bob이 강력추천했던 Budda's Park나 가볼까 싶어 두리번거리다 보니 비엔티엔 인근 가는 버스뿐 아니라 방비엥, 루앙프라방 등 다른 도시로 가는 장거리 버스들도 보인다. 어젯밤 내 옆방 아이가 숙소 리셉션에서 방비엥 가는 VIP버스표를 6만낍에 예매하는 걸 봤는데 그럴 필요가 전혀 없겠다. 방비엥 가는 3만낍짜리 로컬버스가 수두룩한데 뭐.
VIP 버스라고 뭐 다를 것도 없더군. 에어컨 없는 거나 좌석 상태 심하게 불량한 거나 거기서 거기.... 차이라고는 좌석이 지정되어 있느냐 아니냐 뿐이다. 방비엥까지는 겨우 세 시간 거리밖에 안 되니 좀 붐빈다고 해도 일찍 와서 자리 잡으면 된다.
헌데 '부처님 공원'에 가는 버스는 좀 심각했다. 아니, '좀'이 아니라 많이 심각했다.
25인승 승합차였는데 좌석이 다 차 있어도 아직 탈 사람의 절반도 못 탄 것 같다.
하루에 몇 차례 없는 버스라니 나도 사람들 틈에 끼어 꾸역꾸역 올라타긴 했는데....
어찌어찌 떠밀리다 보니 그만 엔진 옆 바닥에 주저앉고 말았다. (엔진 위는 이미 네 명이 차지. ^^)
2인용 자리는 당연히 세 명씩이고 복도에도 가득이지만 본의 아니게 출입문 근처인 내 자리 주위는 그야말로 立錐의 여지도 없어서 고개도 들기 힘들 지경이다. ㅎㅎ
이 숨막히는 와중에도 저 꼬마는 야무지게 카스테라 한 개를 다 먹고... 나는 슬쩍 카메라를 꺼내 든다.
어쩌다 타는 버스여서 그럴까?
놀랍게도 사람들 얼굴에선 도무지 짜증을 찾아볼 수가 없다. 그저 웃을 뿐이다.
정거장에 설 때마다 그 비좁은 틈 새로 짐을 서너개씩 내리느라 시간을 끌어도 웃으면서 기다려주고
새로운 사람들이 올라와 공간을 확보하려고 밀어대도 웃으면서 틈을 내준다.
요금 주고받는 것도 느긋하기 이를 데 없다. 목적지에서 내린 다음 버스를 끼고 돌아가 기사에게 건네준다.
균형 잡을 만큼의 공간도 확보하지 못한 불편한 발들이지만, 햇살을 받으니 상당히 행복해 보인다.
내 발 역시 그 행복의 순간을 만끽하는 중이다. (어떤 쓰레빠?)
당신은 5억 원어치만큼 행복하십니까?
5백만 원어치?
50만 원어치?
어쨌든 잠시 닥치십시오.
지금은 5000낍으로 행복해질 순간입니다.
Budda's Park은 1958년에 힌두교와 불교 사상에 심취한 요기 제사장에 의해 조성되었다고 한다.
공원에 들어서니 유치한 '귀기'가 확 느껴진다. ^^
시바신과 비쉬누신을 비롯한 각종 잡신들, 힌두 복장을 한 왕들, 동물들, 부처님.... 공자, 심지어 전쟁 중에 죽은 군인에 이르기까지, 허접한 콘크리트 조각상들이 즐비하다. 표현과 상상력에서만은 점수를 줄 만 하지만 그렇다고 '강력추천'까지 할 정도는 아닌데.... 서양사람인 Bob에게는 이곳이 동양 정신문화가 총집결된 곳으로 느껴졌던 것일까? ^^
공원 뒤편으로는 메콩강이 흐르고 식당도 하나 있다.
점심시간 맞춰 라이브를 하려나, 웬 동네 형 같은 청년이 리허설 중.
락커 복장을 하고 있지만 부르는 것은 타령쪼의 슬픈 민속음악이다.
오후 시간을 쪼개 쓰려고 그만 자리를 털고 일어난다.
점심 삼아 코코넛 하나 깨어들고 구운 옥수수를 씹으면서 한가롭게 앉아 있으니 텅 빈 버스가 왔다.
버스 창 밖으로 한쪽에서는 추수를 하고 한쪽에서는 모를 심는 벌판이 계속 달려간다.
어느 집 마당에서는 중년의 남녀들이 한마당 모여앉아 손뼉치며 노래하는 모습도 보인다.
눈만 마주치면 웃는 사람들..
즐거울 이유가 많은 사람들..
즐겁자고 사는 인생, 우린 뭣 때문에 기를 쓰며 그 행복을 망치고 있는지....
과연 발전이란 건 행복과 공존할 수 없는지...발전이 행복보다는 불행과 불만을 더 많이 가져다주는 건 아닌지...
선진국 여행자들이 흔히 던지는 이런 종류의 화두에 대해 주제넘다고 느껴왔던 나도 어느새 같은 질문 속으로 빠져들고 있다.
가난하긴 해도 거지는 없다... 누군가 라오스에 대해 그렇게 말했다.
그러니 가난하다는 이유 때문에 소외되는 사람도 없겠지. 내 자랄 때도 그랬다.
지금 한국은 어떤가. 꼬마들도 새 친구를 사귀려면 너희 아파트 몇 평이냐부터 물어보는 세상으로 변했다.
터미널 앞 시장.
라오스 역시 프랑스 식민지 지배의 영향으로 인해 바게트 샌드위치를 많이 먹는다.
Patuxai
파투싸이는 파리의 개선문을 본따 지은, 일명 '라오스의 개선문'이다.
비엔티엔이 자랑하는 아름다운 거리 Lanxiang Road를 따라 올라가다보면 인상적인 건축물이 눈에 들어온다.
미국이 1969년에 비엔티엔 공항을 지어줬는데, 그때 시멘트가 남아서 이 건축물을 짓게 됐다고 한다.
꼭대기에 올라가니 사통팔달 뚫린 도로들이 시원하게 눈에 들어온다.
앞쪽은 아름다운 공원이다.
이 공원이야말로 비엔티엔 최고의 명소가 아닐까 한다. 사람들도 많이 만날 수 있고 탁 트인 경치도 좋다.
놀러나온 사람들과 얘기 좀 해보고 싶어도 반벙어리 신세라서 그저 '사바이디!' 한 마디에 미소를 섞어볼 뿐.
이미 휴대폰과 컴퓨터의 세계에 깊이 들어와 있는 젊은 세대들의 라오스.... 역시 순박하고 행복하기만 할까?
하지만 낯선 사람을 보고 웃어주는 사람들이 더 많으니 아직까지는 인심이 한국 보다 나은 것 같다.
World Peace Gong이란다.
각 나라 국기도 국기지만, 가운데 사이좋게 모여 있는 다양한 종교의 심볼들이 참 보기 좋다.
비엔티엔 여기저기
대통령궁, 정부기관, 프랑스 대사관, 국립도서관 등이 모여 있는 거리.
건물도 멋지고 보행자도 별로 없어서... 분명히 도심 한복판인데도 꼭 휴양도시에 와 있는 느낌이다.
이 거리에 왓 씨 싸켓 등 오래된 사찰을 중심으로 한 관광명소들이 몰려 있다.
남방불교 사원은 화려해서 원래도 크게 끌리지 않았는데, 미얀마를 돌고 났더니 물릴 지경이라.... 패스.
아니, 누가 돈을 저기다..... 5만낍짜리네?
라오스에 KoLao만 있는 줄 알았더니 (주)부영 도 있었구나..
아니다, 쓰리나인 사진관도 있다. ㅎㅎ
디카가 많이 보급되지 않은 나라라 사진업도 유망업종인 모양이다.
여기도 무슨 관공소 건물인데.... 대문 장식이 근사하군.
남푸공원 앞 작은 로터리. 여행자 숙소 거리의 랜드마크 구실을 한다.
서양 여행자들이 좋아하는 스칸디나비아 케익집. 남푸공원 로터리 부근에 있다.
여기는 비엔티엔에서 유일하게 정들었던 곳, House of friuit
매일 아침을 이 집에서 먹었다.
오믈렛에 감동하고 토스트도 커피도 좋은데.... 과일접시에서 그만 기절하게 된다.
하미과, 사과, 배, 파인애플, 드래곤, 망고스틴, 파파야, 바나나....
이 모든 과일이 한 접시에 담겨 나온다. 배 터져 죽는다.
머리 짧게 깎은 여사장님이 직접 새벽시장에 가서 골라온 최고로 좋은 과일들이다. 이틀 연속 첫손님이 되어 이틀 연속 여사장님이 장바구니 푸는 것을 지켜보았다.
빠릿빠릿하고 상냥한 데다 예쁘기까지 한 이 아줌마, 사진이라도 한장 깥이 찍어둘껄.
오늘도 과일의 집에서 아침을 먹고 있는데 금발 미남이 말을 걸어왔다.
폴란드에서 온 목사님인데 Penticost派란다.
엑, 좋다 말았다. 내 복에 무신... ㅋㅋㅋ
한국에도 왔었고 순복음 교회에서 한국 기독교인들을 보고 너무 감동해서 어쩌구....
얼른 화제를 딴 데로 돌렸다. '근데 목사님도 놀러다니시나요?'
태국 치앙라이 산간마을에서 5년째 선교사로 활동중인데 라오스에는 비자 받으러 나왔단다.
어떻게 폴란드 사람이 순복음파 교인이 되어 아시아를 헤집고 다니게 됐을까.
사람의 일생이란 게 참 .... 알 수 없는 인연들이 얼키고 설키며 짜내는 오묘한 직조물이랄까.
여기는 문화센터. 우리나라로 치면 세종문화회관이나 예술의 전당 같은 곳이다.
놀랍게도 라오스는 공식적으로 음력설을 쇠지 않는다.
베트남이 중국 문화권이라면 라오스는 태국 문화권인 것이다. 라오스는 태국과 마찬가지로 4월에 설을 쇤다.
다만 중국계 사람들은 음력설을 쇠기 때문에 베트남에서도 보았던 것처럼 곳곳에 차롓상을 차려놓았다.
인도식당은 싸고 맛있고 어디에나 있다. 마지막 날 저녁을 먹었던 식당 타지마할.
옆 테이블에 앉은 아저씨가 말을 걸어와 이런저런 얘길 나누던 끝에 그만 크게 실례를 했다.
장모님을 your wife라고 지칭한 것이다. 아가씨는 너무 어려 보였고 장모님은 너무 젊어 보였거든.
급당황하여 사과를 했지만 이 아저씨는 별로 신경도 안 쓰는 눈치... 한바탕 웃고 만다.
숙소 앞에 유치원이 있었다. 떠나던 날 아침에 들여다봤다.
비엔티엔을 떠나던 날이 설날이었다. 중국계 시민들이 크게 사자춤판이라도 벌일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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