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일기/아시아(중국 외)

라오스4(루앙 남 타1) - 라오스의 쌩얼

張萬玉 2009. 7. 21. 14:34

메콩강 강물과 하늘이 구별 안 될 정도로 안개가 짙게 깔린 아침.

웬지 모르게 스며들지 않고 겉돌던 동네였는데.... 막상 떠나려니 아쉬워진다. 더 있었으면 정 들었을까?

 

시내를 벗어나자 바로 현지인들의 시장, 그리고 흙먼지 낀 동네가 나타난다. 

진짜 라오스를 느끼려면 내가 묵어야 할 곳은 이 동네였다. 이제 와서 이런 얘기 하면 뭐해.. ㅠ.ㅠ 

북부터미널은 올 때 내린 남부터미널보다 멀었다. 어떻게 서민들이 이용하는 버스터미널이 공항보다 머냐. 

 

루앙남타 가는 버스는 아침에만 두 차례 있는데 자리는 여유있어 보인다.

예매 소동 벌이지 말고 가는 날 직접 사도 될껄 그랬나? 그러나 차장 말로는 어제는 꽉 찼고 날마다 다르니 보장은 못한단다. 그러니 대부분 버스표는 예매에 의존을 하는 모양이지. 

티켓값은 8만5천도 아니고.... 6만5천 낍이었다. 띠용~ 

이 녀석이 두 배 반이나 붙여먹을 셈이었군..

 

'항상 기뻐하라, 쉬지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아마 교회 셔틀버스를 사온 모양이다.

 

내 옆자리에 앉은 독일 아줌마는 남편이랑 함께 여행중이라고 했는데 버스엔 혼자 탔다. 

남편은 독일에서 가져온 오토바이를 타고 갔고 자기는 빌린 오토바이를 반납하고 버스를 탔단다. 

버스와 오토바이, 누가 먼저 도착하는지 내기중이라고.... ^^

5년 전에도 오토바이를 가지고 와 인도를 한바퀴 돌았고 다시 캄보디아로 공수해서 베트남을 종단했는데 이번엔 6주밖에 시간이 안 되어 라오스와 태국 북부만 돈다고 한다. 

하노버에 살고 있는 이 부부는 평소에도 오토바이를 즐겨 타는 오토바이 매니아들이다. 남편은 50킬로 떨어진 직장을 오토바이로 출퇴근 할 정도니 여행에 오토바이를 동반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란다.

나이도 나랑 비슷한 듯한데 이 젊고 패기만만한 기운은 대체 어디서 나오는 것이냐....어찌나 부럽던지..

 

얼마 전까지 미술관 큐레이터로 일했는데 독일 정부가 문화 쪽 지원을 많이 줄이는 바람에 사표를 냈고 지금은 인터넷 쇼핑몰에서 주얼리를 판단다. 영어는 잘 못하는데 눈치가 빨라서 대화가 그런대로 잘 통한다.

유럽에서 온 교양인답게 후진국 국민들에 대한 평가는 지나치게 관대하다. 캄보디아 사람들 게으른 것, 미얀마 사람들 절에서 죽치는 거 다 이해할 수밖에 없다. 희망이 안 보이니 그런 것 아니냐....미국에 대해서는 역시 가차없다. 포사반에 갔던 얘길 하면서 라오스의 지뢰 제거는 미국이 책임져야 한다고 열을 올린다.

 

오늘도 곳곳에서 닭들이 길을 건너 보는 이의 간담을 서늘하게 한다. 닭이 머리가 작아서 어제 치일 뻔하고도 금방 잊어버리니 어쩔 수 없다. 닭을 치면 가족잔치, 돼지 치면 마을잔치..... 하고 웃으며 9시간이나 되는 길을 지루한 줄 모르고 갔다. 나는 옆자리 친구 복이 정말 많은 것 같다. 

 

 

조수석에 앉은 이 아가씨가 자기는 영어공부 하는 학생이라고 소개를 해서 해서 그런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이 버스회사 사장님의 동생이다. 회사랄 것까진 없고... 이 버스와 또 한 대의 VIP 버스의 소유주란 얘기다.

그래도 이 두 대가 루앙 프라방 - 루앙 남 타를 오가는 유일한 대중교통수단이니 대단하긴 대단하다. ^^

빅 마우스 브라더에서 1년간 자원봉사를 하면서 외국인들에게 영어를 배웠다고 한다. 유창하긴 한데 발음이 너무 나빠 알아듣기 피곤하지만 라오스를 여행하면서 얻어들을 기회가 거의 없었던 라오스 속사정을 하나라도 더 들어볼까 싶어 본격적으로 수다판을 벌였다.

 

우선 지명에 자주 나오는 단어의 뜻을 물어봤다. 루앙은 grand, xai는 win, nam은 물(그러니까 '루앙 남 타'는 '위대한  타 강'이란 뜻이다) 등등등.... 속이 다 시원하다.

8남매 중 일곱째인데, 고등학교까지는 루앙 남 타에서 다녔고 대학은 루앙 프라방으로 진학해서 농업을 전공했다고 한다. 터미널 부근에서 희고 예쁜 빌라들이 늘어서 있어 외국인들이 사는 업타운 내지는 별장촌인 줄 알았는데 그게 바로 그녀가 다닌 대학이었다. 

교수들 중 한국사람도 몇 있고 전공 외로 한국어 배우는 학생들도 많단다. 루앙 프라방에 한국인이 세운 대학이 있다는 얘길 들은 기억이 나 혹시 거기 아닌가 물어보려다가 다른 얘기로 흘러가는 바람에 깜빡 했다.

 

라오스에서는 25살이 넘도록 결혼 안 하면 부모님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란다. 자기는 결혼을 늦추고 싶고 남친도 이해하는데 부모님이 들들 볶는다고.....그 걱정을 피하려고 얼른 직장을 잡으려고 열심히 알아보고 있지만 일자리 구하기가 쉽지 않다고 한숨을 쉰다. 아마 전공인 농업 쪽으로는 생각이 없는 모양이다.   

태국에 미얀마 출신 취업자들이 많던데 쓰는 말도 비슷하고 국경도 가까운 라오스 사람들은 거의 없는 것 같더라고 하니까, '왜 낯선 남의 나라에 가서 고생하냐. 라오스는 아직도 개발 여지가 많은데... ' 이것이 라오스 사람 생각이란다.  

 

라오스 사람들을 제외하면 이 버스에 탄 사람들은 거의 트레킹 하러 가는 사람들이다.

정글 트레킹이 됐든 소수민족 마을을 찾아가는 트레킹이 됐든 차량과 가이드를 빌려야 하기 때문에 팀을 짜는 데 필요한 멤버를 구하는 것이 루앙 남 타를 찾는 사람들의 관심사.... 그래서 루앙 남 타를 찾는 여행객들은 다른 지역에서 만나는 사람들보다 훨씬 개방적이다. 

유난히 눈에 띄게 동행을 구하는 할아버지가 있었다. 스위스에서 온 루디라고 했다.

스웨덴에서 온 아가씨 두 명과 군 제대 후 복학을 앞두고 있다는 86년생 한국 학생이 자리를 바꾸어가며 트레킹 정보를 나누고 있었다. 나도 기본적으로는 합류 의사가 있지만 일단 숙소를 같이 잡고 의논해보자고 했다. 

 

경치는 방 비엥에서 루앙 프라방 오던 길처럼 여전히 어메이징이고, 갈대 짐을 진 사람들이나 길바닥에 대고 터는 사람들도 줄을 잇는다. 알고 보니 저 갈대를 베어 말려서 묶어놓으면 중국 사람들이 와서 1kg당 5000낍씩 주고 사간다고 했다. 지금이 수확철이기 때문에 도처가 산악지대인 라오스 전체가 들썩이는 것이다.

 

 

터미널에 도착하니 버스보다 먼저 도착한 독일 아줌마 남편이 마중나왔다. 트레킹 팀원 모집으로 부산스럽던 사람들이 모두 같은 툭툭을 타고 독일 아저씨가 예약했다는 해놨다는 Tavyxai 게스트하우스로 갔다가 자기 취향과 형편에 맞는 숙소를 찾아 뿔뿔이 흩어졌다. 시골이니 더 저렴할 것이라는 예상을 또 빗나갔지만(7만 낍) 밤이 너무 늦어 나는 일단 짐을 풀었다.     

 

 

새로운 도시에 들어가면 우선 지도부터 구하는데, 라오스의 경우 도시 안에서는 지도가 거의 필요없었다.

그래도 숙소 현관에 붙어 있는 약도를 찍어가지고 다니니 편하긴 하다. ^^

Green Discovery 여행사를 오른쪽에 두고 들어온 골목에서 두 번째 골목으로 좌회전하면 첫날 하루 묵었던 Thavixay Guest House. 첫번째 골목으로 우회전하면 트레킹 다녀온 뒤 이틀을 묵었던 Adounsiri Guest House가 있다. 첫번째보다 두번째 숙소 강추. 

 

친절하고 깨끗한 건 기본이고... 첫번째 숙소보다 더 싸고(5만 낍) 조용하고...

자기 방문만 연다면 얼마든지 친구를 만날 수 있는 구조라서 분위기도 화기애애하다.    

 

혹시 태국에 다녀오셨거나 태국에 사시는 분들은 이 사진을 보신 적이 있을지도 모른다.

Aounsiri G.H. 주인이 라오스에서 유명한 록 가수라는데... 이름이 뭐라고 했더라?

라오스 사람인데 태국에서도 유명한 건지, 아니면 태국 사람인데 라오스에 투자를 한 건지 확실히 모르겠지만

태국 가서 (맥주인가 음료인가) 이 사람 얼굴이 들어간 광고 포스터를 발견했을 때 어찌나 반갑던지... ^^ 

 

이 마을은 동 트기 전부터 동네방송을 한다. 이장님인지 시장님인지 길고 긴 훈시를 하시고 그게 끝나면 노래가 쿵짝쿵짝 울려나온다. 아참, 이 나라가 사회주의 국가였지?

닭들도 사납게 울어대고 한밤중에도 동네 개 한마리가 짖기 시작하면 온 동네 개가 다 짖는다. 가끔은 미친 닭들도 합세한다. 아침에 밥 먹으러 나가서 마주친 스위스 영감님은 간밤에 개 소리 때문에 한숨도 못 잤는데 새벽녘 일찍 정부가 나서서 깨워주기까지 한다고 불평이 늘어졌다. (나 자랄 때 우리 동네도 그랬는뎅~ ㅋㅋㅋ)

 

사진 왼쪽 집이 지도에 나오는 Banana 레스토랑(Green Discovery 길 건너편)

이 집에서는 주로 저녁을 먹었다. 아침은 좀 늦게 열기 때문에 건너편의 Minority Restaurant에서 해결했다.

 

시리얼과 과일이 듬뿍 들어간 고농축 요거트... 12,000낍.

어찌나 양이 많은지 아침을 든든히 먹는 편인 나도 이거 한 사발이면 끝. 

 

'소수민족' 식당은 '왕쥐형님' 프로젝트, '녹색여행 캠페인' 등의 활동과 관련된 쥔장이 운영하는 식당 같다.

어쩌면 서양인이 운영하는지도 모르겠다. 음식은 보통이지만 서비스는 수준급이다. 

 

역시 '소수민족' 식당 벽에서 발견한 포스터. '라오스에서 이런 짓들은 하지 마세요..." 

 

루앙 남 타 사람들 1

 

입 다물고 걸어가는데도 한국 사람인지 어찌 한 눈에 알아보고.... ‘사랑해요!’를 외치며 따라오는 동네 아이들

말이 안 통하니 '아침부터 어디 가냐?'고 묻지도 못한다. ㅜ.ㅜ

 

 

별로 할 일도 없는 작은 동네라 몇 차례만 오락가락해도 눈에 익은 사이가 된다.

동네 가게에서 기타 치며 놀던 청소년들이 아는 척을 하길래 갔더니 자기들이 먹던 대추알 만한 푸른 열매를 젓갈에 찍어 하나 권해준다. 산에서 딴 야생 열매인 듯 쌉쌀하고 풋내가 났지만 씹는 맛이 그런 대로...

노래 하나 불러보라니까 부끄럼을 타면서도 뭔가 하나 불러줬다.

(근데 이제 보니 저 손동작이 눈에 익은데? 혹시 연애한다는 뜻 아냐?)

 

 

얘들은 윗 사진 애들의 형뻘쯤 되는 총각들. 이 동네의 엘리트들이다.

먹는 것도 멸치랑 오징어, 맥주다. 라오스에 오징어가 있었어? 하니 베트남에서 들어온 거란다.

그 귀한 것들을 아낌없이 권하며 May I introduce... 로 시작하는 걸 보니 영어회화 연습을 하고 싶었던 모양이다. 두 명은 하노이와 비엔티엔에서 유학중인데 방학을 맞아 고향에 돌아와서 환영파티를 벌이는 중이다.

나머지 두 명도 루앙 남 타에서 대학에 다니고... 어쨌든 모두 다른 나라 사정에 관심이 지대한 대학생들이다.

하지만 영어실력이 딸려 욕심만큼 물어보질 못한다. 가족이 몇이냐, 직업은? 취미는? 장동건이 한국에서도 유명하냐, 어느어느 나라 다녔냐.... 그러고 나니 쳐다보고 웃으며 맥주잔 기울일 일밖에 없다. ^^

 

 

나를 부른 총각(윗 사진 맨 왼쪽)의 부인(왼쪽)과 고등학교 동창.

나도 총각들과 같이 사진 한 장 찍어보려고 초등학교 선생님이라는 고교 동창에게 카메라를 넘겨췄다.

처음에는 엄두를 못 내고 손사래를 치더니 알려주는 대로 찍고 화면에 나오니 너무 기뻐한다.

이 사람들이 루앙 남 타, 아니 라오스의 미래겠지?

부디 욕심 내어 많이 발전하되 이웃도 함께 품을 줄 아는 이 따뜻한 마음 잃지 않기를....

 

 

결혼식 구경

 

 

아침 일찍 이런 귀한 장면과 마주쳤다. 오늘 저녁에 결혼식을 하는 신랑이라고 했다.

장소를 물어보니 (영어는 못하길래 혹시.. 해서 중국어로 물어봤는데 적중!) 마을 체육관이라고 구경오란다.   

 

 

해 질 무렵 Stadium을 찾아가는데, 말이 안 통해 신체언어로 묻고 대답한 결과 찾아간 곳은 초등학교.

일본 사람들이 지어준 학교인 모양이다. 

 

 

다시 물어물어 겨우 Stadium을 찾아갔더니 과연 풍선과 꽃으로 장식된 입구로 사람들이 꾸역꾸역 들어간다.

 

 

기웃거리는데 나를 중국인으로 오해했는지 한 아저씨가 중국말로 들어오라고 부른다.

 

 

알고 보니 신랑 신부의 부모가 다 중국사람이다. 라오스에서 났으니 라오스인들의 결혼식이지만 중국 냄새가 물씬 풍긴다. 어쩐지 하객을 맞는 사람들 복장이 중국 씨솽반나에서 본 다이족 전통의상 같더라니....

 

중국에서 친척들이 50명이나 왔단다. 국제버스를 대절해가지고 국경을 넘어.....

 

식장 안에 들어가보고는 깜짝 놀랐다. 온동네 잔치를 하는지 준비된 좌석이 오백 석은 족히 넘겠다.

 

실내 체육관 안을 식장으로 꾸몄다.

 

시골 마을에서 이 정도로 큰 잔치를 하는 사람은 상당히 큰 부자겠다 싶어 물어보니

혼주가 중국사람이라 부자인 것은 사실이지만 결혼식에는 온 마을 사람들을 다 초대하는 게 라오스 풍습이라 넉넉잖은 사람들도 결혼식을 하게 되면 이 정도는 한단다. 그래서 소도 팔고 밭도 팔고....아니면 그냥 살고...

 

 

 

시작하려면 한 시간은 족히 기다려야 할 것 같아 사진 몇 장 찍고 슬며시 빠져나왔다.

라오스 전통 결혼식 같으면 두세 시간이라도 기다렸겠지만 담배 권하는 중국 결혼식은 마이 봤다 아이가.

운동장에서는 동네 축구가 한창이고.... 그 뒤로 높직한 언덕이 보였다.

  

작년말에 지어져... 드디어 우리 마을에도 Stupa를 갖게 됐다고 여행사 직원이 자랑하던 바로 그 절이다.

 

 

서늘한 바람이 오가는 탁 터진 공간에서 석양빛을 받으며 웬 서양남자가 큰댓자로 누워 있었다.

요가매트와 손 모양을 보니 명상을 하는 모양이다.

 

 

 

석양에 물드는 마을을 굽어보고 있으니 괜히 이 마을에 있다는 사실 자체가 행복으로 느껴진다.

라오스 사람들의 행복에 나도 전염이 됐나보다.

 

 

시장, 병원 구경

 

숙소 동네가 서양풍이라면 걸어서 15분 거리에 있는 시장 동네는 완전 중국풍이다. 

중국 징홍에서 넘어온 국제버스가 있고 온 동네 간판이 중국어와 병기되어 있고 중국 물건이 넘쳐난다.

 

 

 

시장은 꽤 컸다. 

아침마다 여행자들이 있는 식당을 돌며 팔찌 사라고 괴롭히는 2인조 아카족 아줌마들을 여기서 마주쳤다.

처음에 하도 못살게 굴길래 하나 사줬더니 다음끼, 다음날에도 와서 나만 찾던 무서운 아줌마들. ^^

아예 상대를 안해줘버리니까 하얗게 눈을 흘기며 돌아서던 이 아줌마들이 뜻밖의 장소에서 날 만나니까 친정자매나 만난 양 펄펄 뛰며 반가워한다. 그러더니 장난끼 넘치는 제스처로 또 권한다. 아이고, 내가 몬산다!!

 

쌀국수를 이렇게 판다. 천 낍이었던가?

동남아에서 여행하다 돈 떨어지면 시장으로 가라. 싼 값에 먹을 것이 천지다.

  

먹을 만하다. 진짜다.

 

아, 신기해라. 된장도 있다..(맛은 많이 다르지만...)

 

 

두부에 닭발구이에 소 내장구이에 순대에.... 심지어 우리나라에서만 나는 줄 알았던 김까지 있다.

강에서 건져올린 파래 종류지만....

어찌나 신기한지 몇 장 사가지고 구워서 장 보러 나온 아줌마들과 나눠먹었다.

말이 통하지 않으니 서로 바라보고 웃기만 했지만 지금까지 생생하게 기억나는 따뜻한 순간이었다.

 

 

시장 한 바퀴 돌고 나오는데 누가 ‘킴!, 킴!’ 하고 부른다. (헉, 본명이 들통나는군. 그래요, 저 김씨입니다.^^)

돌아보니 이틀 전에 맥주랑 오징어를 나눠먹었던 대학생 그룹의 리더다.

오토바이로 달리면서 어케 금방 날 알아봤냐?.하니 여기 여자들 중엔 짧은 머리가 없단다. 듣고 보니 그렇네.

이름을 몰라 우물쭈물 했더니 자기 이름은 Xing이란다. 참, 닉네임이 hicarubee였지? 하니까 너무 좋아한다.

오늘도 이 열심청년은 영어회화 연습에 열을 올린다. 계속 이 말 저 말 시키다가 단어가 떨어지니까 어딜 가느냐고 태워다 주겠단다. 마을 구경 하러 나왔다니까 5분쯤 떨어진 자기 사는 동네로 실어다줬다.

동네 사람들이 아는 체 하니 이 친구 어깨가 으쓱한다. ^^

 

공항 관제탑 같이 생긴 굴뚝에 빨간 십자가가 그려져 있는 건물... 마을 병원이라고 했다.

 

예상보다 훌륭한 시설...

 

 

병원 게시판에 붙어 있는 병원 홍보자료들과 여러 가지 캠페인 포스터들로 미루어보아 외국의 지원을 받아 설립, 운영되는 병원 같았다. 우리나라도 정부와 민간 차원에서 후진국에 좋은 일 좀 많이 해주었으면 좋겠다.

 

병원 뜰 정자에 사람들이 모여 있길래 병원 문 열기를 기다리는 사람들인가보다 했더니.... 

 

 

돗자리에 이불까지 펴놓고 한쪽에선 돌을 괴고 나무를 때가며 아침밥을 끓이고 있다. 아마 통원치료 하기에는 너무 먼 곳에 사는 고산족들인 모양이다. 병원에서도 다 양해가 된 사항인 듯.... 

 

여기가 Xing의 집이다.

 

Xing은 동네에서도 존경 받는 형인 듯 싶다.

 

 

  

사실 이 동네가 숙소 동네에서 그리 먼 것도 아닌데 루앙 남 타에서 닷새(트레킹 1박 포함)나 머물면서 경찰서 아래쪽으로는 와보질 않았다. 아침 산책 나온 길이라 일단 한번 둘러보고 돌아갔지만 오후에 스웨덴 자매랑 다시 한번 찾아왔을 정도로.... 그다지 특별할 것도 없는 이 마을의 인상이 오래도록 잊혀지지 않는 건 그것이 내가 진짜 보고 싶어했던 라오스의 쌩얼이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무비자 체류가능 기간 15일을 맞추려고 다른 일정 없이 비워놨던 라오스에서의 마지막 날이 타 강가의 이 작은 마을 덕분에 정말 여유롭고 행복했다. 서둘러 떠나지 않길 정말 잘했다..

 

타 강가에서

 

그날 오후. 숙소 앞 뜰에 앉아 같이 강가에 가기로 한 스웨덴 아이들을 기다리고 있는데 도무지 국적이 짐작 안 가는 얼굴을 가진 덩치 큰 아저씨가 역시 국적을 짐작할 수 없는 영어로 마구 질문을 퍼붓는다.

어디서 왔냐, 이름이 뭐냐, 결혼은 했느냐.... 

당신은 어디서 왔냐 물어보니 두바이에서 왔단다. 그리고는 묻지도 않는데 자기가 다녀온 여행지 얘기를 막 쏟아놓기 시작이다. 자기 얼굴 새긴 접시와 뱀을 목에 감고 찍은 사진까지 꺼내가지고 와 막 자랑하면서...

 

 

생전 처음 본 두바이인이라 호기심이 없지 않았지만 어찌나 무례하고 주책스러운지 가능한 말 안 섞는 게 좋겠다는 판단을 내리기까지 3분도 안 걸렸다. 스웨덴 애들이 나오자 더 신이나서 본격적으로 판을 벌릴 기세다.

해 지기 전에 강가에 가야 한다고 일어서니 자기도 가겠단다.

내가 단호히 No 하는데도 옷갈아입고 나온다고 방에 들어간다 그 사이에 우리 셋은 잽싸게 내뺐다.

내가 잘못한 거냐고 물어보니 스웨덴 자매 박수를 치며 너무 잘했다고 웃어죽는다. 저 사람과는 같이 가고 싶지 않았단다. 사람 사귀려고 먼저 움직일 수는 있지만 일방적으로 들이대다간 저꼴 난다.

특히 남의 영역을 침범할 때 소심할 정도로 매너 챙기는 유럽 사람들에게는 절대 오버하지 말 것. ㅋㅋ 

 

 

Xing이 가르쳐준 대로 병원을 지나 밭 사이로 들어가니 사람들이 배추를 솎고 있다. "싸비아디!"를 외치며 지나가니 "니 하오!" 하는 인사말과 함께 어디 가는거냐는 중국말이 돌아온다. 나를 중국사람으로 오인했나보다.

나도 그들이 라오스 화교인 줄 알았는데, 자기는 중국사람이고 여기에 땅을 빌려 농사를 짓고 있다고 한다.

 

씨솽반나州 멍라에 사는데 여기 와서 농사 지은지는 2년 됐단다. 여기서 거둬서 여기 시장에서 파는데 라오스 사람 둘 더 쓰고 하는데도 1년에 5만원은 번다고 자랑이다. 요즘 대도시 사무직 노동자 월급이 연봉 7~8만원 정도 한다는데 징홍 사는 농부라면 중국에서보다 훨씬 큰 돈벌이임이 틀림없다.

  

 

중국 농부들이 가르쳐준 좀 편한 오솔길을 찾아 강가로 내려가는데 등 뒤로 노을이 붉다.

 

 

 

강은 너무 맑고 너무 조용하고.... 대나무 다리까지도 조용하다.

 

 

강에서는 소년 둘이 작살로 고기를 잡고 세 여인이 목욕 중이다.  

 

Sarah야 뭐가 그렇게 아름다우냐? 

강물에 열중해 있는 네 옆모습 표정도 강물 못지 않게 아름답구나.

 

어두워질 때까지 강가에서 놀다가 돌아오는데 어둠에 잠겨드는 오솔길은 또 얼마나 예쁜지....

모두 즐거워져서 노래를 부르며 시내로 나왔다.

 

이 자매들과는 1박2일 트레킹과 무앙싱 소수민족 마을을 함께 돌면서 정이 꽤 들었지만 긴 얘기 나눌 기회는 별로 없었는데, 덕분에 저녁상에 아주 푸짐한 이야기 반찬을 올릴 수 있었다.

스웨덴.... 평소에 알고 싶은 게 많은 나라였지. 깊은 선망의 念을 가지고 있는....

한반도의 두 배 정도 되는 땅에 인구 천만 명도 안 되는 널널한 나라...

사민당의 뿌리가 깊고 내각의 절반을 여성이 차지하고 있는 나라....

하지만 굳이 정치나 사회운동까지 들먹이지 않아도 평범한 여대생들일 뿐인 이 자매의 일상적인 얘기 속에서조차 사민당과 페미니즘운동의 깊은 뿌리가 느껴졌다.

내가 갖고 있던 스웨덴 사람에 대한 선입견은 '조용한 사람들'이었다. 동생은 그 이미지에 딱 들어맞는데 언니는 완전히 내 선입견에서 벗어난, 적극적이고 명랑하고 다른 사람에 대한 관심도 많은 아가씨.... 덕분에 흥미롭고도 시사적인 얘기를 많이 들었다. 언니 Sarah가 전해주는 스웨덴 얘길 하자면 길어지니 언제 별도로.....  

 

 

언니 Safah는 한국에 대해 이미 지식이 많은데도 알고 싶은게 어째 그리 많은지....

특히 한국 정치에 대해 관심이 많았다. 쏟아지는 질문에 일일이 대답해주기가 쉽지 않길래 아예 일본의 강점, 한국 전쟁, 분단, 근대화, 민주화운동 등등 근현대사를 간추려 들려줌으로써 우리나라 민주주의가 질퍽거리고 있는 이유를 설명해주려고 했는데.... 우리의 역사가 워낙 파란만장하기도 하지만 그래도 그렇지, 너무나 열심히 듣고 지나치게 감동한다. 처음 듣는 얘기라며 눈물까지 글썽거릴 태세다. 아마 호주 있을 때 사귀었다는 한국 남학생 때문이지 싶다.

 

그 학생도 곧 워킹 할러데이가 끝나는데 한국 들어가기 전에 태국에서 다시 만나기로 했단다. 그러나 스웨덴과 한국은 너무 멀지 않겠냐고 한숨을 쉬는 것 보니 한때 지나쳐가는 관계 이상으로 생각하고 있는 듯했다.

마음 정리하는데 혹 고려할 만한 게 있을까 싶어 한국의 뿌리깊은 유교적 전통과 가족주의에 관한 얘기도 해줬는데, 그래놓고는 괜히 짠해져서 멀고 먼 노르웨이까지 시집 가서 살고 있는 블러그 친구의 사연까지 들려줬다. 아니 장여사, 헤어지라는 거야 말라는 거야? 암튼 오지랖도 넓으셔..

(헌데 어째... 진짜 딸네미 같이 느껴지던 걸. ^^)  

이 날은 라오스뿐 아니라 라오스를 찾은 과객들조차도 서로에게 쌩얼을 내놓은 날이었나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