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미널에 가서 로컬버스를 탔는데 어제만큼 붐비진 않는다. 장거리 이동 인구는 그리 많지 않단 얘기다.
맨 뒤에 자리를 잡았는데 중국 여자애가 내 옆에 와서 앉더니 말을 건다.
항주에서 中醫大 5학년째인 李梦曦. 영어를 꽤 잘한다.
방학을 맞아 쿤밍까지 기차로 와서 쿤밍에서 버스로 넘어왔단다.
같이 숙소 찾자고 해서 그러자고 했는데 어찌나 말이 많은지 살짝 부담스럽다.
우리 앞자리에 덥수룩한 남자가 앉았는데, 현지말도 하고 짐도 배낭 아닌 헝겊보따리라서 얼핏 보고는 중국계 라오스인인 줄 알았다.
헌데 심심한지 기타를 꺼내 치기도 하고 영어책도 꺼내보고...... 심상찮다 했더니 역시 일본사람이었다.
8년째 떠돌아다녔는데 일본으로 돌아가기 싫어서 방 비엥에서 게스트하우스를 준비중이란다.
버스는 먼지를 뒤집어쓴 누런 나무들이 줄을 선 길을 꼬불꼬불 돌고 돈다.
옥색 강물이 아름다운 곳이 나오길래 다 왔나 했더니 아직이고, 시장이 나오길래 다 왔나 했더니 아직이다.
광장 앞에 도착해서야 비로소 내리란다. 네 시간 걸렸다.
햇살이 내려꽂히는 광장을 가로지르니 마을의 주도로가 나오고 이 도로를 중심으로 중간 골목이 몇 개, 그리고 뒤쪽으로는 강이 흐른다.
정말 작고 간단한 마을이다.
헌데 이 소박한 동네에서도 10달러 이하짜리 방을 구하려니 쉽지 않다. 강가에 있거나 좀 깔끔한 방은 30달러 이상 부른다.
마을 한 바퀴 돌다시피 해서 8만 낍짜리 트윈베드룸을 간신히 구했다.
2층 문 열어놓은 게 내 방.. ^^
몽희더러 점심 먹으러 나가자니까 가방 가득 꾸려온 식빵을 보여준다.
알바 해서 번 돈이 많지 않기 때문에 한 푼이라도 아껴야 한단다.
아이고, 징헌 녀석! 진짜 여행 끝날 때까지 먹을 거 걱정 안 해도 되겠다.
뜨거운 햇살 아래 쉴 곳과 먹을 것을 찾아 헤매는 배낭족들.
집 나오면 *고생인데 걍 집에서 큑!하지....
여기는 선풍기가 돌아가고 서양식 요리도 되는 쵸큼 비싼 식당. TV에서는 90년대 미드 Friends가 방영중이다. ^^
여기는 라오스식만 되는 식당. 선풍기도 안 돌려주는데 받을 만큼 다 받는다.
레포츠와 파티를 즐기러 오는 배낭족들이 주로 찾는 동네라서 대낮엔 거리가 텅 빈다.
오전에 한탕 끝내고 다시 오후 영업을 위해 출동하는 카약 운반차량
마을 광장에서는 무슨 행사를 하려는지 무대설치 준비로 바쁘다.
무장경찰들도 나와 있고...(라오스 통틀어 경찰은 딱 여기서만 보았다. 상당히 평화로운 나라라는 얘기.. ^^ )
마을 한 바퀴 돌다 다시 와보니 행사가 시작됐다. 여행축제(이런 것도 있나?) 개막식 행사란다.
햇살은 뜨겁고 연설은 끝이 없고....
식후행사로 무슨 볼꺼리가 있을까 싶어 인내심을 갖고 기다렸지만 어르신들 축사만 길게 이어지다 끝나버렸다.
대신 'teacher's traing center'라는 간판이 붙은 건물 앞에서 선생님들이 체조 연수 받는 구경을 했다.
앞에서 지도하는 사람이 지도서를 발 밑에 두고 보면서 시범을 보이면 선생님들이 열심히 따라한다. ^^
살짝 엿본 남의 집 뜰안.... ^^
여행객을 한눈에 알아본 동네 처자들. 앞다투어 사진을 찍어달란다.
돌아가며 모두 독사진을 한 장씩 찍긴 했는데 인화할 데가 어디 있는지도 모르겠고... 그냥 화면으로만 보여줬다.
그래도 몹시 기뻐한다. 다음 여행엔 폴라로이드 사진기라도 준비해 와야 할 것 같다.
이건 미얀마에서도 봤던 건데... 구슬만 컸지 비슷한 놀이인 듯. 돈이 걸렸는지 완전 몰두중이다.
야외 이발소만 있는 줄 알았는데 야외 미장원도 있네?
중국계 아이들인가보다. 반가워서 중국말로 말을 걸어보니 못하는지 부끄러운지 집 안으로 냅다 내뺀다.
좀 앉으세요. 레모네이드 드릴까요?
이 강을 건너는 다리는 두 개다. 하나는 돈 내고 건너는 콘크리트 다리, 다른 하나는 돈 안 내도 되는 대나무 다리.
강변의 좋은 자리는 방갈로들이 몽땅 차지하고 있다.
삐꺽거리는 대나무 다리로 건너가본다.
아하, 텐트도 빌려주는구나.. 간만에 야영 한번 해볼 걸 그랬나?
방 비엥은 바쁜 일상에서 탈출하여, 혹은 고된 여행길에서 잠시 발길을 멈추고 빈둥거리기 딱 좋은 곳 같다.
멋진 산봉우리가 코 앞에 보이는데도 그 사이를 방갈로들이 막고 있으니 그쪽으론 갈 수가 없다.
방갈로 투숙객인 척하고 한 방갈로 앞을 지나쳐 들어가니 넓은 초원이 펼쳐져 있는데, 그 끝에는 철망이 쳐져 있고 사나운 개가 달려든다.
포기하고 다시 강변으로 돌아나왔다.
산쪽으로 해가 지니 강물을 적시는 일몰을 보지는 못했지만 그 마지막 드리우는 빛으로 인해 강물은 신선하게 빛난다.
그 빛에 취해 찍은 사진 또 찍고 또 찍고 하다가 어두워져서야 더듬더듬 다리를 건너왔다.
여기는 한국음식점.
음식점이라기보다는.... 중고등학교 때 죽치던 분식집 같은 느낌이다.
저녁 때 다시 찾아가 칼국수를 시켰더니 쌀로 빚은 쫄깃한 국수가 나왔다.
칼국수의 벗인 칼칼한 김치는 웬지 국적불명이었지만 오랫만에 맛보는 멸치국물이 어찌나 달던지....
58년 개띠 동갑내기 부부가 이 음식점 주인이다.
배낭 메고 인도와 동남아를 떠돌다가 1년 전에 방 비엥에 정착, 이 음식점을 차렸다고 한다.
지금은 광장 앞 절 옆에 있는 5층건물에 게스트하우스도 준비하고 있다는데 아마 지금쯤 오픈했겠다.
이 강에 반해서 방비엥에 눌러앉았다길래, '멋지긴 하던데.... 그 정돈가요?' 물으니 지금은 건기라 그렇지만 우기에 이 강을 보면 아마 이해가 갈 꺼라고 한다. 사방천지를 뒤덮는 물안개, 그리고 비 갠 뒤의 무지개가 죽음이란다.
저녁을 먹는 동안 방 비엥 장기투숙자 동포들이 들락날락하며 인사를 청한다.
음식점 사장님 다음 가는 고참이라는 정사장이란 분, 막 전입했다는 59년생 아저씨, 어제 태국에서 들어온 86년생 영화연출 전공 여학생, 중국여자친구와 여행중인 한국남학생.... 한국에서부터 알고 지낸 사람들마냥 친숙한 느낌이다.
저녁을 먹고 나니 정사장님 묵고 있는 방갈로에서 콘서트 한다고 가자는데.... 이건 늪이다. 콜롬비아 태양여관 같은... ㅎㅎㅎ
화려한 블빛이 하나 둘 켜지고 댄스음악이 고막을 때리기 시작하면 이 작은 마을은 금세 파티장으로 변한다.
밤이 깊어지니 길가에 술취해 누운 서양애들 천지다. 현지인들 오염되어가는 건 시간문제겠다.
바로 위 사진과 같은 배경인데 조명만 바뀌었다. 밤화장을 지우고 나니 완전 새침떼기가 됐네. ^^
새벽 2시쯤 '퍽!' 하는 소리가 욕실 쪽에서 나길래 일어나보니 욕실 세면대 쪽 밸브에서 나사가 튀어나오고
그 자리에서 거대한 물대포가 발사중이다. 어찌나 센지 끄지도 못하겠다.
놀라 리셉션으로 뛰어내려갔지만 아무도 없다. 급히 문을 두들기는데 다행히 야경 돌던 할아버지가 나타났다.
말이 안 통하니 무작정 방으로 끌고 올라갔는데 그 큰물을 보고도 별로 놀란 기색이 아니다. 건물 아래로 내려가 주 밸브를 잠가서 일단 큰물을 잡고는 다시 방으로 돌아와 세면대 아래 밸브를 잠그더니 두 손을 모아 뺨에 대고 자라는 시늉을 한다.
완전히 홍수가 나서 바닥에 놓았던 배낭이 다 젖었는데 그냥 자라고?
어이가 없지만 이 한밤중에 그 할아버지라고 무슨 수가 있겠나.
그 와중에 몽희는 잘도 잔다.
아침에 일어나 이제 고쳤나 하고 중간밸브를 열어보니 물이 안 나온다. 아직 아무도 안 일어났나보다.
리셉션에 내려가 얘기하니 밸브 바꿔주고 청소하는 아주머니를 들여보내 물을 닦아주긴 했는데 어째 한 마디 사과도 해명도 없다.
체크아웃 하며 내 짐 다 젖었다고 한 마디 하니 방 바꾸어주겠단다. 체크아웃중인데... 장난하나?
좀 쎄게 항의하면서 가격이나 깎아달랄까 하다 관뒀다. 불성실 탓이라면 몰라도, 얘들에게도 이 사건은 불운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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