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브르 박물관
이 박물관 관람을 앞두고도 바티칸 미술관 관람에 앞서 느꼈던 것 같은 약간의 스트레스가 있었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그곳이 '보고 즐기는 '미술관'이 아니라 '교양인으로서 섭렵해야 하는 고전창고'로 여겨졌기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물론 '고전'의 세계로 일단 들어가면 그 나름의 깊은 재미가 있고, 나올 때 뿌듯함을 한 아름 안고 나온 경험도 꽤 있었다.
하지만 짧은 시간 동안 스쳐가는 귀한 기회라는 생각은 마치 초딩시절 '고전경시대회'를 준비하던 마음처럼 조급한 욕심을 갖게 하는 것이다.
그러나
루브르박물관은 박물관 자체가 예술이었고,
(물론 우피치미술관에서 지겹도록 본 1400~1500년대의 성화 주제 그림들도 있긴 했지만) 그리스 신화들을 주제로 한
훨씬 인간적인 소재, 인간적인 표현들을 구사한 르네상스 시대의 작품들이 훨씬 많았다.
역시 고전적인 작품들이라 묵직하긴 하지만, 사전 지식 없이 보아도 작품이 전하고 있는 정열, 분노, 유머, 애잔함 등에 웬만큼 공감할 수 있었기에 즐거웠다.
(아마도 이런 작품들은 보고 또 보면서 그 맛의 깊이를 알아가게 되리라)
나의 경박한 시선을 낚은 것은 3층 회화관이었다. 프랑스의 낭만주의, 신고전주의로 분류되어 있는 작품들이 좋았고
북유럽 작가들의 사진 같은 그림들도 17,8세기의 풍속도를 읽게 해주는 재미가 있었다.
걷기는 정말 엄청 걸었다.
그리스 조각들이 전시된 기나긴 회랑, 동양유물 전시관(제국주의 시대에 아시아와 아프리카에서 약탈해온), 나폴레옹의 소장품들을 전시한 '나폴레옹 아파트'까지...
루브르박물관은 나의 집중력과 끈기에 도전장을 보냈고 나는 '사력을 다하여'(다리가 끊어지는 것 같았음) 응전하였다.
힘들었지만 지금 생각해봐도 값진 하루였다.
매표소는 지하에 있고 지상으로는 피라밋 형의 유리지붕이 튀어나와 있다.
루브르박물관은 인상적인 첫만남을 준비하고 있었다.
들어서자마자 맞은편 저 멀리서 날개를 펼치고 맞아주는 승리의 여신 니케아.
이렇게 큰 그림들을 감상하기는 처음이다.
별도의 조명 없이 자연채광 아래서 작품들을 감상할 수 있게 해놓은 그 안목과 정성!
고된 관람을 잠시 쉬는 동안 창밖으로 눈을 돌리면 왕궁의 화려했던 시절을 그려보게 만드는 멋진 전경이 펼쳐진다.
왕이 살던 루브르궁이 베르사이유로 옮긴 뒤 박물관이 된 이 건물 자체도 대단한 볼거리.
사진을 찍을 수 있어서 마음에 드는 작품들을 일일이 찍어가며 열심히 메모도 해두었는데,. 메모가 사라져버리니 ㅠ.ㅠ......
지금도 그 인상이 기억나는 몇 장만 올려본다.
천편일률적으로 보이는 금빛 목판 성화 중에서도 그나마 개성을 보여준 유일한 작품. 제목은 모름(이하 동문)
노인의 망연자실.
딸의 죽음을 슬퍼하나보다 생각했는데, 그의 다리를 안고 있는 여아를 보니 죽은이는 아내인 모양이다.
<뱀에 물려 죽은 클레오파트라> 다빈치의 제자였던 잠피에트리노의 작품이라고 한다.
감상 후기 1. 뱀이 물어도 왜 하필 저 아픈 데를.....
2. 눈매가 아직 생에 대한 미련을 못 버린 것 같아 보여 측은하다.
3. 육덕 좋은 저 몸매..... 클레오파트라 이미지엔 안 어울리지만 실제로 여자로선 저런 몸매가 이상적인 몸매 아닐까?(나도 자신감을 좀 가져보련다. ㅋㅋ)
4. 갈색 머리에 녹색 두건, 잘 어울리네.
5. 저 바구니 속에 뭐가 있길래 스스로 목숨을 버리는 순간에도 놓지 못하는 걸까?
제목이 질투, 였던가? 사기꾼, 이었던가?
아무튼 개성 넘치는 작품.. ㅎㅎㅎ
여성 중에서도 아름다운 여성인데 '세례자 요한'이란다.
모나리자의 미소보다 좀더 화려한 미소... ^^ 한 눈에 봐도 레오나르도 다빈치 작품인 줄 알겠다.
내가 아는 누구와 너무 닮은 이 사람은.... 누구라더라?
두꺼운 방탄유리와 겹겹이 둘러싸인 관람객들 때문에 '가까이 하기엔 너무 멀었던 당신'. ^^
촛불의 힘!
여기저기 모사하는 사람들
베니스의 산 마르코 광장?
가봤던 곳이 그림 속에 있으니 반가워서 자세히 보게 된다.
ㅎㅎ 여기는 바로 여기다. (예술에 대한 열정이 흘러넘치는 저 분위기.... 아주 쥑이지 않습니까?)
오르세 박물관
음악에는 민감해도 미술은 잘 몰라왔던 내가 이 박물관에서
색으로도 행복해지고 색을 통해서도 음악에서 느끼는 것만큼의 행복을 느낄 수 있다는 걸 처음으로 경험했다.
작품들과 얘기 나누는 느낌이었다. 특히 '빛'에 완전히 빨려들어.....
드가처럼 행복한 사람보다는 내면의 아픔을 따뜻한 빛으로 끌어내어놓는 그림들이 내 시선을 사로잡았다.
그림에서 받은 인상들을 간직해두고 싶었지만 사진을 찍을 수 없으니 루브르 박물관에서보다도 더 열심히 끄적거렸다.(gone!!)
박물관 치고 그렇게 넓은 편도 아니었는데, 좋았던 그림에게로 몇 번씩 왕복했던 탓에 박물관을 나올 때는 다리를 절며 간신히 걸어나왔다.
파리 사람들은 오르세 박물관을 정말 마음껏 자랑해도 좋다. 이 박물관 하나만으로도 프랑스인의 예술적 저력을 얘기해도 좋다고 생각한다.
몸 속 깊이 예술세포를 지닌 사람들...(연애세포도.. ^^)
오르세 박물관에서 처음으로 빠리지앵들이 부럽다는 생각을 했다.
퐁피두 센터
루브르 박물관이 근대 이전을, 오르세 박물관이 근대를 보여주었다면 퐁피두 센터는 현대 및 현재 진행형의 작품들을 보여주는 미술관이다.
블러그에서 현지 번개를 제안하신 forever님과의 약속 때문에 갔던 첫날은 약속이 불발되는 바람에
독특한 센터 건물과 센터 앞 광장에 몰려든 사람들 구경만 실컷...
들어가기엔 너무 늦은 시간이기도 하고 일요일은 공짜라는 얘기를 어디서 들은 생각이 나 다음날 다시 왔다.(공짜 구경도 불발.. 18세 이하만 공짜란다. ㅎㅎ)
고색창연한 파리의 거리와는 완전히 딴판인 이 초현대식 건물은 1971년부터 1977년까지 7년 공을 들여 지어졌다고 한다.
건물 내부가 다 보이도록 모든 벽면이 유리로 지어졌으며, 정면에는 붉은 에스컬레이터가 사선으로 지나가고
뒷면에는 각종 배관들이 형형색색의 파이프로 그대로 노출된 그야말로 파격적인 디자인.
누구에게 들은 이야기인가? 아니면 내가 느낀 느낌이었나? 어쨌든 나의 여행 메모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붉고 푸른 파이프가 동맥, 정맥을 연상케 한다. 핏줄을 타고 흐르는 사람들.....'
1층으로 입장을 하면 건물 외벽에 설치된 에스컬레이터를 통해 2층으로 올라간다.
로비 천장에 걸린 저 인물은.... 아마도 퐁피두 대통령?
나무판에 판 홈이다, 라고 암만 주문을 걸어도 어쩔 수 없이 떠오르는 얼굴 형상.. ㅎㅎ
박물관이 넘치는 지역으로의 여행 준비라고 열심히 읽었던 <서양미술사> 덕분에, 이제는 미술이 개념미술이라는 사실을 알고는 왔는데
정작 비디오가 대부분인 전시물들을 보고 한대 맞은 기분이었다.
비디오 화면들은 당연히 단번에 이해불가한 몸짓들을 끊임없이 보여주고 있고, 짐작되는 메시지들은 너무 무겁고 철학적이었다.
전투적 페미니즘. 몸에 대한 탐구, 상식을 뒤엎는 실험, 정치 만화 등등....
미술이 개념만 남게 된다면 철학과는 어떻게 다른가? 아름다움이란 것의 핵심은 과연 무엇일까?
5층에 올라가니 겨우 칸딘스키가 나왔다
미로, 피카소, 브라크 등 눈에 익은 그림들이 나오니 오히려 안심이 된다.
하지만 그들 역시 격동의 시대를 겪은 예술가들... 그들 역시 오르세의 작품들에 비하면 급하고 공격적이다. 마구 들이대고 마구 실험해들어간다.
난 왜 삐딱이들에게 끌리는 걸까?
요런 전시관도 한 칸 있었다.
아이디어가 빛나는 디자인들이 가구, 생활용품들과 결합했다.
센터 바깥쪽 구경도 재미있다.
공연문화가 발달해서 그런가? 혹시 눈 마주치기를 사양하는 개인주의적 매너 때문?
이렇게 한 방향을 향해 테이블들을 놓은 노천까페들이 적잖이 눈에 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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