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느강 유람
원래 강에서 배 타는 거 그저그래하기 때문에 별 기대는 없었지만 그 기대에도 못 미쳤다.
시내버스 투어만도 못한 것 같다. 어쩌면 혼자여서 그랬는지도.... ^^
밖에 나가면 춥고 안에 있으면 심심하고....
통역기에서 한국어까지 나와 놀랐다. 조그만 나라에서 정말 많이도 오는가보다.
통역기 안에서 아가씨가 혀꼬부라진 소리로 '8번 누르세요' 한다. ^^
이런 관광은 안 해야지 하면서도.... 그래도 덕분에 파리의 지리에 대해 감 잡는다.
잊지 못할 일 하나.
티켓을 끊고 승선을 하려다가 웬지 허전해서 보니 카메라가 없다.
내가 허둥대는 꼴을 봤는지 뒤에 있던 아저씨가 날 '꾹꾹 찌르며' 매표소 앞에 두고 오더라고 스페인어로 알려준다.(그나마 귀라도 틔워둔 덕을 톡톡이 봤다)
부리나케 뛰어가보니 매표소 창구 옆에 얌전히 남아 있는 내 똑딱이.
10분 이상 경과했건만 그게 그 자리에 그대로 있다는 게 신기했다. (중국이나 남미 같으면 어림도 없을 텐데.....,)
총출동한 일가친척들과 정신없이 웃고 떠들며 사람들의 눈총을 받던 매너꽝 대머리 아저씨였는데,
그래도 이 시끄러운 아저씨 덕분에 귀중한 카메라, 그보다 더 귀중한 여행의 기억들을 지킬 수 있었다.
개선문과 샹젤리제 거리
샹젤리제 거리에 도착했을 때 하늘은 잔뜩 찌푸려 있었다.
파리의 여느 거리와는 달리 이 동네는 신축 건물들이 눈에 많이 띄었다.
하지만 새 건물들 디자인도 고풍스럽다.(루이 비똥 사옥?)
개선문을 향해 씩씩하게 걸어가던 중 한바탕 소나기의 공습을 받고는 인근 백화점 건물로 뛰어들어갔다.
비가 쏟아져서 그러나, 갑자기 덩달아 용무가 급해져 화장실을 찾으니 이 건물엔 화장실이 없다고 한다.
유료화장실조차 없다네. 상식적으로 말도 안 되는 얘긴데...... 너희들은 어떻게 하니, 물었더니 직원 화장실은 개방 안 한단다.
열 받아서 씩씩거리며 돌아다녀봤지만 진짜 화장실 표지는 안 보인다. 이게 도대체 어쩐 일이래?
결국 비 그칠 때까지 참다가 1킬로쯤 떨어진 공원 화장실까지 뛰어가야 했다. 냉정한 인간들!
게다가 베르사체 매장 진열장을 찍다 한소리 듣기까지 했으니 이날 기분은 완전 바닥으로 추락.
(베르사체 매장은 못 찍었지만 다른 진열장은 몇 장 찍었지롱.. ^^ )
MONOPRIX...... 우리나라로 치면 이마트쯤 되려나?
문구류는 살짝 비싸고 생필품은 대부분 쌌다. 특히 화장지, 비누 컵 등등은 한국보다 더 싼 듯했다.
디자인들이 예뻐서 여기서 살림 차리게 되면 집 꾸미느라 신났겠다는 생각이 든다.
노트 한권과 샐러드 3.5유로짜리 한 그릇 사들고 나오니 비가 말짱하게 개었다. 상쾌하게 젖은 거리에 어둠이 내리기 시작한다.
로뎅 박물관
굳이 이 박물관을 찾아간 것은 그 소문 짜한 '생각하는 사람' 때문은 아니었다.
이곳에 혹시 그의 모델이자 공동작업자이자 연인이었던 까미유 끌로델의 흔적이 남아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더 컸다.
그러나 로뎅의 작품 속에서 까미유 글로델의 손길을 찾기에는 공부가 모자라..... ^^
까미유 끌로델도 그랬지만(책과 영화를 통해 알게된 바로는) 로뎅 역시 매우 혈기왕성하고 예술적 집념이 강했던 사람이었던 것 같다.
작품에서 읽히는 감정들은 대부분 거칠고 심각하고 탐닉적이다.
그런 표현을 위해 시도한 것으로 보이는 무수한 점토 습작들에서조차도 예술적 정열에 사로잡힌 그가 느껴진다.
작품의 소재를 거의 문학작품 속에서 따오고 문인들과의 교류도 많았고, 직접 작품을 쓰기도 했던 걸 보면 문학적 소양도 풍부했던 듯.
발자크, 전형적인 마초, 야심가 같은 인상. 빅토르 위고 란다.
박물관으로 만들겠다는 약속을 하고 프랑스 정부로부터 받은, 그의 작업실이자 저택이었던 이곳은 아름다운 정원으로도 입소문이 난 곳이다.
처음에는 뒷마당이 있는 줄 모르고 일단 전시관부터 들어갔기 때문에 '뭐 좀 그렇다...' 했는데
작품을 감상하다 무심코 창밖으로 던진 시선에 넓고 아름다운 정원이 들어왔다.
'생각하는 사람', '세 망령' , '입맞춤', '아담', '이브' 등 그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작품들이 망라되어 있는 '지옥의 문'
(이거 찍을 때만 해도 뭐가 뭔지 몰라 너무 작게 찍었다. ㅜ.ㅜ)
원작 '지옥의 문'에서 벗어나 크게 제작된 '세 망령'
정원에서 느긋하게 뒹굴며 오후시간을 보낼 예정이었는데 갑자기 미친 비바람이 불어 긴급히 철수.
파리 날씨는 미쳤다. 특히 4월의 날씨에는 사계절이 다 있다고 할 정도로 종잡을 수가 없다.
후쳇 동굴(caveau de la huchette) 까페
원래 감옥으로 쓰이던 동굴을 혁명 후에 개조하여 까페로 활용하고 있다는, 빠리에서 역사가 가장 오래된 재즈클럽이다.
연주가 10시부터 시작된다고 해서 너무 늦은 시간이라 망설이다가 조금이라도 보고 가자 싶어 후쳇 거리로 발길을 돌렸다.
예매하지 않으면 표가 동 난다고들 하길래 여섯 시부터 갔더니 입장까지는 무려 세 시간도 더 남았다.
인근 지하철역 부근을 배회하다가 서점이 보이길래 까막눈 주제도 잊고 들어갔는데 마침 눈에 들어오는 '한국 전래동화'!!
불어를 몰라도 짐작할 수 있는 익숙한 단어들, 해순이 달순이 별순이 / 김선달 / 도깨비...... 어찌나 반갑던지..
그러고도 시간이 남아 후쳇 골목을 이리저리 쏘다니며 밤이 오기를 기다리는 파티 피플들 구경하다가
어느새 또 또 미친듯이 쏟아지는 폭우를 피해 14.9유로짜리 포뮬라(정액제 세트메뉴 파는) 파는 저렴한 식당에 들어가
(5유로 이하로 끼니 때우고 수돗물 먹는 주제에...) 의외로 비싼 (6유로짜리) 맥주 한 병 마시며 때우고, 때우고, 때운 뒤
겨우겨우 입장이 가능한 9시 반이 되었다.
한 사람씩밖에 지나다닐 수 없는 실내 통로. 소문대로 동굴, 맞다.
관광객이 대부분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예상 외로 빠리 사람들도 꽤 되는 것 같다.
주로 중년 커플들이다.
연주에 대한 기대 때문인지 모두들 들떠 괜히 서로 아는체 하고 웃고 그런다.
중국 심천 출신 아가씨와 스페인 청년은 빠리 여행중 만나서 커플이 되었다고 한다.
입장료에 포함된 칵테일 한 잔씩 빨며 중국 수다.(중국에서 살았던 경험이 중국 사람 사귀는 데는 아주 큰 도움이 된다. ^^ )
옆 자리엔 빠리에서 철학 석사과정을 하고 있다는 제법 연로한 한국 여성 둘이 앉아 있었으나 웬지 싸한 분위기 때문에 말 붙이기가 외국에들에게보다 더 불편하다.
이상하게 유럽에서 만난 한국인들은 대개 이런 식으로 많이 불편했다. 오히려 안 만나느니만 못한 동포. ㅜ.ㅜ
늙은 고양이를 떠오르게 하는 할머니 피아니스트
포커페이스 드러머. 안경이며 복장이 학교 선생님 아니면 얌전한 가정주부 같은데.......
큰 덩치와 선글라스로 카리스마 팍팍 풍겨주는 콘트라베이서
힘 좋은 연주를 뽐내던 앨토 트럼펫, 여자가 트럼펫 부는 거 처음 봤다. 멋지구리~
얼굴에 '나 재즈..' 라고 써 있는 소프라노 트럼펫. 여자가 부는 앨토 트럼펫보다 부드럽고 상냥하다.
모두 땀 흘리며 마음껏 기량을 펼친다.
순서지도 없어서 뭐가 무슨 곡인지도 모르고 들었는데, 느낌으로는 미국 냄새가 팍팍 나는 재즈.(프랑스에 왔으니 샹송을 들으러 가야 했나?)
거의 모르는 곡이고, 딱 한 곡 귀에 익은 게 나오긴 했는데 처음엔 그 곡이 그 곡인 줄도 몰랐을 정도로 변주가 화려했다.
좌석이 꽉 차자 바닥도 마다않고 주저앉은 열성 관객들.
분위기가 달아오르자 노부부 커플이 그 좁은 공간에도 아랑곳없이 맞잡고 추기 시작한다.
대여섯 곡이나 들었나?
음악도 좋았지만 네 시간도 넘게 기다린 생각하면 이대로 일어서기 싫지만 지하철 끊길 걱정에 그만 일어나야 했다.
그만 가기로 결심하고도 어찌나 빼곡한지 빠져나갈 엄두가 안 나 두 곡이나 더 지나보낸 다음에야... 겨우 "빠르동!"을 외치며 간신히 빠져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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