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스에서 한두 시간 거리에 깐느, 망통, 에즈, 쌩뽈 등 돌아볼 만한 작은 마을들이 많다고 해서
원래 낙점한 곳은 같은 방향에 있는 망통과 에즈,
가보고 그저그러면 방향을 바꾸어 쌩뽈을 돌아보려고 했지, 원래 깐느에 갈 계획은 없었다.
그러나 에바랑 수다 떨다가 8시에 나가는 숙소 셔틀 놓치고, 내친 김에 더 놀다가 9시에서야 출발.
바로 니스 구시가지에 있는 버스터미널로 가도 늦는 판국에 내일 탈 빠리행 유레일 에약한다고 기차역부터 들리는 바람에 또 지연.
결국 에즈로 직접 가는 버스를 놓쳐버렸다. 다음 버스는 오후에나 있다고 하네.
내 딴엔 머리 쓴다고 에즈와 같은 방향인 깐느행 버스를 탔는데(분명히 에즈를 거쳐간다고 했다), 산동네로 올라갈 거라는 나의 예상과 달리 계속 해변만 끼고 달린다.
영어 쓰는 게 부담스러워서 꾹 참고 있다가 에즈 아직도 멀었냐고 물어보니, 에즈는 지나친 지 오래고 이번 정류장이 깐느라네..
별 수 있나, 엎어진 김에 쉬어가지 뭐. 운 좋으면 스테파니 공주라도 볼지 누가 알아? ^^
일단 그 소문 짜한 근위병 교대식이나 챙겨보고 나서 에즈를 경유해가는 가는 버스가 있나 알아보자고.
그 와중에도 북경에서 온 신혼여행 커플을 만나 여행정보를 교환. 내가 에즈 간다니까 같이 가겠다고 따라나선다.
나도 어떻게 가야 할지 확실치 않은데 같이 헤매겠으면 따라오라고 장님이 장님 인도했는데
땡볕 아래서 30분도 넘게 에즈 가는 버스를 기다리던 이 커플님들은 포기하고 니스행 버스에 올랐고
오기가 난 나는 이 가게 저 가게 돌아다니며 에즈 꼮대기로 올라가는 버스를 묻고다닌다. 말이 잘 안 통해서 신체언어까지 섞어가며......
니스로 돌아가는 버스가 그렇게 많은데 어째서 에즈 꼭대기 가는 버스는 한 대도 없냐. 심지어 교통경찰들도 모르겠단다.
결국 나도 포기하고 니스행 버스에 올라탄 뒤에서야 버스 운전사에게 물어 해답을 얻어냈다. Eze Sea에서 내려 Eze villa 가는 83번으로 갈아타란다.
같은 Eze라도 Eze villa와 Eze Sea는 완전히 딴 동네.
니스에서 에즈 빌라로 가는 버스의 종점은 에즈 빌라이기 때문에 깐느에 Eze viia행 버스가 없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며
니스에서 깐느 가는 버스가 경유한다는 Eze는 Eze villa가 아니라 Eze Sea였던 것이다.
우여곡절 끝에 도착한 Eze villa행 버스 환승 정거장.
이제는 타고 올라가기만 하면 되려니 했는데 이마저 쉽지 않다.
주변 경치가 좋아 안 오는 버스에 대한 불평을 접고 거의 한 시간 가까이 기다리지 않았나 싶다.
암만해도 Eze는 나와 인연이 없는가보다 포기할 무렵, 함께 버스를 기다리고 있는 고딩 커플이 에즈 빌라에 산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버스 운행 간격을 물어보니 그냥 드물다고만 하면서, 만일 네 시까지 안 오면 전화로 엄마를 부를 거라고 한다.
그럼 그때 나도 데려가달라고 개길 셈으로 다시 주저앉았다.
(그럼 내려올 땐? 그땐 그 동네 파출소에 부탁할 요량이었다. 프랑스 경찰이 얼마나 친절한지 보려고..ㅎㅎ)
2시간 가까이 기다리니 드디어 83번 버스가 왔다.
어찌나 비탈이 가파른지, 주제넘게 한 자리 차지한 강아지는 불안한지 앉지도 못하고 네 발로 뻐팅기며 균형을 잡는다.
사실 어딜 가든지 즐거울 것 같았던 햇볕 좋은 오후였기 때문에 버스정류장에서 보낸 두 시간이 그리 아깝진 않았다.
올라가는 길의 경치가 환상이다. 그러나 너무 심한 커브 때문에 셔터를 눌러봐야 소용돌이 화면만 나올 뿐.
다 왔다.
에즈 빌리지는 저 바위 위 뙤똑하게 올라앉은 옛 마을을 가리킨다.
저 마을에는 옛 사람들이 적의 침입을 막기 위해 쌓아올리고 파놓은 성벽과 성채, 동굴에 의지해 차린 호텔과 선물가게들이 있고
이 동네 주민들은 좀더 버스를 타고 올라가는 건너편 마을에 산다.
있는 힘껏 땡겨본 돌산 꼭대기
사람들 다니는 루트에서 살짝 빠지는 호젓한 숲으로 들어가니 바다에 발을 담근 절벽급 언덕이 눈 앞에 아찔하게 펼쳐진다.
두 달쯤 후 체스키크롬노프에서 만나 비 내리는 밤을 함께 지새웠던 한 여인은, '짜라투스트라........'를 읽고 완전히 매료된 나머지
그가 걸어올라왔던 이 길을 자기도 똑같이 밟고 싶어서 (내가 버스를 타고 올라왔던 그 급경사를) 걸어올라왔다고 했다.
여행에서 돌아오면 나도 그 책 한번 읽어보리라(최소한 이 절벽 장면만이라도...) 마음 먹었었는데 이럭저럭 까맣게 잊고 있었다. ㅎㅎ
막차인 6시 버스를 타고 오는데 드넓게 펼쳐진 마을이 석양에 빛나는 광경, 정말 혼자 보기 아깝더라만....
아쉽게도 카메라 배터리가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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