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절에(~2011)/地芚山房

갈등

張萬玉 2011. 7. 23. 22:38

진행성 암 환자가 항암치료 한 지 6~7개월 경과하면 만나게 된다는 중요한 결정의 기로...

우리라고 예외는 없나보다. CA19-9 결과가 나오는 2주후에는 우리도 결정을 해야 한다. 

약물을 바꿔서라도 치료해달라고 할 것인지 항암치료를 포기할 것인지....  

 

쓰게 되면 무슨 약물을 쓸 것인지 미리 얘기 좀 해주면 결정하는 데 훨씬 도움이 되겠구만 의사샘의 입은 끝내 열리지를 않았다.

사실 자신도 확신할 수 없는 비보험 약물을 권하는 것은 샘에게도 약간 부담이 될지도 모르겠다(과잉진료..).

남편은... 부작용이 어느 정도인지, 사람에 따라 효과가 다르다니까 자기의 경우 어떨지 한 차례 해봐도 상관없지만, 경희대병원에서 권하는 대로 (사실 경희대 선생님도 감히 '권'하지는 않고 '자기 견해로 볼 때... ' 이렇게 얘기하신다) 한 달 정도 항암제 없이 경과가 어떨지 지켜볼까 싶은 생각도 있단다. 

모험인 건 두 방법 모두 마찬가지다.  

오늘 만난 경희대병원 선생님도 넥시아의 효과를 올려줄 수 있는 한방약물을 (임상적으로) 처방해줄 테니 3주 후에 경과를 좀 보자고 하신다.

전에 우리가 물어본 적 있는 고주파 온열치료도 상승효과를 기대할 수 있을 것 같다고 하시니  

그래, 名將들은 아니지만 성실한 병사들은 다 모여라, 한번 힘을 합쳐보자꾸나.

 

말 나온 김에 당장 실시하자고, 경희대에서 돌아오는 길에 집 근처에 있는 에덴요양병원으로 달려갔는데

암 부위를 알려주는 CT만 있으면 바로 해줄 줄 알았더니 온열치료 역시 의료행위이기 때문에... 상담부터 해야 한다고 한다.

사실 (대체치료라는) 뚜렷한 노선을 걷는 병원이기 때문에, 현대의학적 치료를 완전히 종결하지 않은 시점에서의 상담이 약간 부담스러웠지만

화학치료에 대해 부정적일 거라고 예상했던 바와는 달리, 급히 진행되는 암이라면 화학치료를 받는 게 필요하며

이 병원에서 하고 있는 보완치료들 중 병행하면 효과를 거둘 수 있는 치료가 있는지 검토해보자고,

그 판단을 하려면 암의 분화정도를 알아야 하니 서울대에서 했던 조직검사지를 가져오고,  면역검사도 해보면 좋겠다고 한다.

항암치료 계속에 대한 견해는 조직검사지와 면역검사지가 취합되는 대로 들어보기로 하고

한 사이클(12회) 받아보면 효과를 짐작할 수 있다는 온열치료는 일단 시작하기로 하여...췌장까지 쏴준다는 43도 고주파를 맞은 뒤 

떡본 김에 제사 지내자고.... 요양병원 뒤쪽으로 난 4킬로미터 산책길 걷기로 '오늘의 저녁운동'까지 마친 뒤 돌아왔다.  

 

그래서 어제 하루동안 심혈을 기울여 내린 결론은 

8월 3일에 예약해둔 서울대 외래진료에서 화학치료는 일단 보류해두고,  넥시아와 고주파로 치료하며 경과를 보자는 것이었는데....

 

 

오늘 갑자기 남편이 결정을 번복했다.

점심식사를 마치고 낮잠을 자는가 싶던 남편이 갑자기 벌떡 일어나 노트북의 액셀 프로그램을 열고 뭔가 열심히 입력을 한다.

들여다보니 그래프다. 다음번 CA19-9의 예상치를 알아보고 있단다. 

CA19-9 지수의 정확도란 게 개인차가 심해서 암의 진행정도를 알려주는 지표로 사용하기 어려운 경우가 적지 않다지만

자신의 경우, CT결과 및 항암치료 결과와 거의 같이가고 있는 양상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에 그래프가 그려질 만한 신뢰도가 높은 수치라고.... 

지금까지의 측정치와 항암치료 기간(일수)를 X, Y 축에 넣어 그려보면 8월 1일에 할 CA19-9 결과를 짐작할 수 있다는 거였다.

한술 더 떠 더 정확하게 보려면 무슨 회귀분석을 해야 한다나..(그게 도대체 무슨 말이여?) 

추이대로라면 3100 정도 나오겠다고 한다.      

그 말 대로라면 땅을 쳐도 모자랄 만큼 속상한 일이지만 어찌나 어이가 없는지 실소를 참지 못했다. 무슨 저런 환자가 다 있냐.

헌데 남편은 웃지도 않고 골똘히 생각에 잠겨 있더니 예상 밖의 발언을 한다.  

 

1. 항암치료는 6월 29일로 끝났고 최종적인 혈액검사 날짜가 7월 6일이었으니 2350이라는 최종 CA 지수의 결과는 (일상적인 1주 휴식기간을 포함해서) 항암치료를 하고 있는 동안의 상태를 보여주는 것이다. 그러니 8월 1일 혈액검사에 잡힐 CA 지수 결과는 항암치료를 전혀 하지 않고 넥시아와 넥시아 보조제(한방 첩약), 그때까지 실시할 예정인 온열치료 5회로만 치료한 결과라고 할 수 있겠다.    

 

2. 따라서 그 수치를 보면 넥시아의 효과를 가늠해볼 수 있지 않겠느냐.

 

3. 그동안 항암치료와 넥시아를 병행했기 때문에 넥시아의 치료효과를 확인할 기회가 없었는데

이번 결과에서 현재 그래프가 그리고 있는 예상치와 비슷하게 나온다면 넥시아 복용에 대해 재고해봐야겠다.

(어제 결론내린 과정을 통계라는 도구를 이용해서 좀더 세밀하게 추적해본 것인데 결론은 엉뚱하게 나는구나)

 

그럼 수치가 얼마 정도 나와주면 넥시아의 효용을 믿을 수 있다고 보느냐고 물었더니 2500 좌우면 납득하겠다고 한다.

사실 넥시아의 효과에 대해 확인할 수 있는 객관적인 지표라도 있으면 내 속도 시원하긴 하겠지. 돈이 어디 한두 푼인가.

하지만 효과에 대한 판단과는 별개로.... 경희대 선생님, 그리고 처방약에 대해 심리적으로 의지하는 바가 꽤 컸기 때문에 남편의 발언은 적잖은 충격이었다.   

 

나 : CA19-9 결과에 작용하는 변수들이 그렇게 단순하지는 않을 것이다."

 

남편 : 대체적인 경향을 짐작할 정도는 된다고 생각한다.

 

나 : 당신의 통계가 어느 정도 맞다고 치자. 그리고 결과가 3000정도로 나왔다고 치자. 그랬더라도 지금까지 항암을 하면서도 좋은 컨디션을 유지할 수 있었던 데는 넥시아 덕분 아니겠느냐. 면역과 항암은 또 다른 문제라고.... 넥시아를 먹으면서도 암은 커질 수 있다고 하신 말씀 생각 안 나냐.

 

남편 : 문제는 암 크기가 아니라 종양표지자 수치다. 이 수치는 암의 활동이 앞으로 활발해질꺼라는 선행지수의 의미를 갖고 있기 때문에 이 수치에 어떤 형태로든지 영향을 미쳐야 효과가 있다 없다를 판단할 수 있을 꺼다.  

 

나 : 아이고, 잘나셨수. 당신이 왜 환자를 하고 있누. 의사를 하지....

 

 

항암을 하든지 쉬든지 간에 넥시아는 속는 셈 치고라도 좀더 먹어보자고 사정사정을 하는데도 남편의 태도는 요지부동이다.

 

1. CA19-9 수치가 3100 이상 나오면 병원에서 권해주는 항암제로 바꿔 2차 치료 들어가겠다.

 

2. 그럴 경우 분명히 비보험 약제를 쓰게 될 텐데 한 달에 최소 200만 원 이상 들어갈 것이고, 그렇게 되면 넥시아 300만 원에 온열치료 300만원... 치료비로 월 800만원씩 쓰게 되는 셈이다. 이제까진 유시민 복지부장관 덕분에 큰 부담 없이 왔지만 지금부터가 집 팔고 논 파는 단계로 들어가는 거니 정신 바짝 차려야 한다.

 

3. 그렇다고 비용 때문에 안 하겠다는 얘긴 아니다. 다만 뭔가 일관된 기준을 갖고 판단에 임하자는 것이다.  최선이 안 되면 차선의 결정이라도 할 수 있는 기준을 만들지 않으면 암 치료 시장에 휘둘려다니기 십상이다. 

 

4. 3. CA19-9 수치가 2500 정도 나오면 넥시아가 듣는다는 얘기니 항암치료 쉬면서 넥시아 계속 먹고, 필요하다면 고주파 온열치료가 됐든 면역주사가 됐든 효과가 어느 정도 입증된 보완치료 받으라면 다 받겠다. 

 

맞는 말씀은 맞는 말씀인데,

이런 결론들이 가져올 결과를 상상하는 것이 도대체 믿음으로써가 아니라 불안으로써 다가오니.....

저녁 내내 걱정에서 벗어나지지가 않는다. 제발 2500 이하로 나오게 해주십사고 물이라도 떠놓고 빌어볼까.

하긴 이 정도 정리라도 해가야 사무적인 데다 권위적이기까지 한 서울대병원 샘 앞에서 헤매거나 휘둘리거나 주눅들지 않을 수 있긴 한데....

남편님아, 3100이 나와서 항암치료 계속하더라도 넥시아 그냥 쓰면 안 될까?

고주파 치료도 하고 내친 김에 미슬토 주사도 맞고.... 그냥 남들처럼 믿습니다만 외치면서 가면 안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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