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절에(~2011)/地芚山房

쿨하게?

張萬玉 2011. 8. 4. 21:15

9회의 치료를 끝으로 항암치료를 한 달간 쉰 결과를 보러가는 날. 

CA19-9 예상 최고치 3100이면 2차 항암치료 들어가고, 희망수치 2500 정도면 항암치료 쉬면서 면역치료 쪽으로 선회하고...

혹시 2700 정도 나오면 어떻게 한다고 할까.

이것이 지난 일주일간 우리가 고민했던 바였다. 예측했던 범위가 '최악'까지 고려하고도 이 정도였는데... 

 

3650이란다.

역시 암이란 놈은 우리의 예측을 허용하지 않는구나.   

고주파치료 받는 에덴병원에서 조직검사 결과지를 보더니 세포 분화정도로 볼 때 두 번째로 성질 급한 놈이라고, 암만해도 항암은 해야 할 것 같다고 해서

약물을 바꿔 다시 치료에 들어갈 각오는 어느 정도 하고 왔는데, 그래도 그렇지 예상보다 높은 수치에 진짜 뒤통수 한대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작년 12월에 최종판정을 받고 항암을 시작하기로 했던 때의 CA19-9 수치가 3600이었는데

두 배 크기로 늘어난 전이된 암세포들과 (운 좋게도) 약간의 부작용, 그리고 그 대가로 얻은 7개월간의 생명연장 기간...

이것이 항암치료의 대차대조표다. 7개월여의 원을 돌아 원점으로 돌아온 셈이다.

2차항암으로 기대되는 생명연장 기간은 3~4개월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처음 원보다 작은 원을 그리며 다시 원점으로 돌아올 것인가?  

아니, 신체적으로는 두번째 출발점보다 좀더 나쁜 상태로 끝나겠지. 내성도 더 강해져 3차항암 자체를 의미없는 것으로 만들지도 모른다.

 

그렇다 하더라도.... 우리에게 과연 다른 선택의 여지가 있을까?

7개월간 굳은 믿음으로 꾸준히 복용했던 넥시아조차 항암제를 끊은 상태가 되니 졸병 노릇이라도 제대로 하는 걸까 싶을 정도로 무력해보였고

그 많은 사람들이 입을 모아 추천했던 고주파 온열치료란 것도 항암제라는 대장이 선두에 서지 않으니 마음치료 차원으로 격하시켜야 할 듯한데....   

이제 정말 암이 주도하는 스케줄대로 갈 수밖에 없게 되는 걸까.

 

항암치료라도 이왕 해줄 거 빨리 해주면 좋겠는데

남편이 잇몸이 솟아서 식사가 좀 불편하다고 하니 당장 잇몸치료부터 하라면서, 일주일 후에 혈액검사와 엑스레이 검사를 한 뒤에 해주겠다고 한다.

'항암을 할 환자이니 긴급으로 처리해달라'는 소견서와 함께 치과로 긴급예약을 넣어주어 치과로 갔는데

엑스레이 찍고(에휴, 우리 엑스레이 너무 많이 찍는다...) 한참을 기다려 진료실에 들어갔는데 5분도 채 안 되어 나온다.

치료스케줄이 잡혀 있지 않은 상태라 내일 다시 와서 치료를 받으라고 한단다.

'긴급'이라며? ... 이게 긴급이란다. 일반으로 예약을 하면 두 주일 정도 기다려야 한다나.

에구, 이번주는 매일 병원행이네. 

월요일엔 에덴병원에서 보자고 하여 조직검사지 등 의무기록 받으러 왔고(이것도 내과에 예약한 뒤에 환자가 직접 와야 바로 복사해준다)

화요일엔 고주파치료 받으러 에덴병원에

수요일엔 CA19-9 결과 보려고

목요일엔 치과치료 받으러, 금요일도 고주파 치료 받으러....

병원출입 없이 살던 사람이 평생 다닐 병원을 한꺼번에 다니고 있다.

원체 차 타기 싫어하는 사람이라 생각 만으로도 피곤한 모양인지 은근히 날을 세우는데

나라도 무뎌져야지, 힘든 상황이 오더라도 그저 여삿일 만나듯 척척 지나가야지.... 마음을 다지고 또 다져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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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데

오늘 치과치료 받으러 다녀오는 길에... 길가에 삐쭉 튀어나오게 세워둔 승합차의 헤드라이트를 백밀러로 받아버렸다.

나 정신 엇다 두고 다니는 거니... ㅜ.ㅜ

옆에서 졸던 남편이 번쩍 눈을 뜨더니 얼른 내려 승합차 운전자에게 사과하고 (등 깨진 거 고치라고 4만원을 내주고)

자기가 운전대에 앉더니 우리 백밀러 깨진 것까지 고쳐버리자고 카센타로 직행한다.

위기상황에서 군소리 한 마디 없이 나서서 책임지고 처리하는 가장본능....당신 없으면 난 이제 어쩌니.

 

그나저나 2차 항암치료를 결정한 뒤로 더욱 쿨해진 남편...

안 가고 싶다고 안 갈 수 없는 노릇이고 가고 싶어도 운이 다하지 않았다면 안 가게 될 테니 현실을 직시하고 꿋꿋하게, 갈 데까지 가보잔다.

진행속도가 느린 사람에겐 효과가 있을런지 모르지만 자기 경우는 해당사항이 없는 것 같다고 넥시아도 고주파치료도 다 그만두겠다고 한다. 

이것저것 하네 안 하네 하는 게 자기에겐 더 스트레스가 되니 차라리 마음 편하게 살자고 한다. 

2차 항암이 허락하는 시간 동안 하던 일이나 마무리하겠다고 한다.(그는 요즘 손자에게 읽히겠다며 짬짬이 자기 살아온 얘기를 정리하고 있다.)

그동안이라도 좋은 체력 유지하기 위해서 밥 열심히 먹고 운동 열심히 할 테니까 맛있는 거나 많이 해달란다.

 

그 얘길 듣고 보니, 이 아프다고 점심 건너뛴다는 것을 간신히 달래서 샌드위치 한 조각 먹이며, 당신도 이제 속썩이기 시작인가? 우울했던 일이 목에 탁 걸리네.

새벽마다 울면서 기도하느니 그 체력을 아껴 식이요법이나 더 신경써주지... 하던 어느 환우분 말씀마따나

지금 내게 필요한 건 불안과 걱정이 아니라 차가운 머리와 부지런한 팔다리,

그리고 즐거운 하루하루를 보낼 궁리뿐이라니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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