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절에(~2011)/地芚山房

나 울지 않아요

張萬玉 2011. 7. 21. 10:14

이틀 전에 찍은 CT는 2주 전 의사 샘 말이 틀리지 않았음을 확인시켜주었다.

원발암 크기는 그대로지만 임파절에 전이되어 있는 몇 개가 커졌다고 한다.  

더 나쁜 것은 종양지수가 1700에서 2350으로 비교적 가파르게 올라갔다는 사실.... 이건 이후 암의 활동이 더욱 활발해질 것임을 예고하는 징표다.

 

선생님, 그럼 어떻게 해야 하죠?

 

글쎄요, 뭐라고 드릴 말씀이 없네요.

 

그냥 젬자라도 좀더 맞혀주세요.

(한방병원 선생님 말씀으로는 젬자의 보조제로 사용되는 젤로다의 제조사가 그 약효를 입증하는 서류를 제출하지 못해 보험대상에서 취소되었다고 한다.) 

 

젤로다랑 같이 써도 안 듣는데 젬자만 맞는다고 듣겠나요?  소용없을 꺼예요.

 

그럼 어떻게 되는 건가요?

 

곧 암이 커지겠죠.

 

아직 체력이 이렇게 좋잖아요.      

 

암이 커지면 증상이 나타날 거예요.

 

다른 약은 없나요?(사실 나는 원치 않지만... 묻지 않을 수가 없다)

 

보험 안 되는 약이 없는 건 아니지만 효과에 대해서는 나도 뭐라고 말 못하겠어요.

그래도 해보시겠다면 2주 후에, 이번에 본 CA19-9 수치는 2주 전 꺼니까 2주 후에 한번 더 혈액검사 해보고...... 

하지만 크게 기대할 건 없으니 잘 생각해보고 오세요.

 

사실 대화가 이렇게 사려깊게 진행되진 않았다.

그는 그저 침착하게 자기 일을 할 뿐이었고, 환자의 가족은 공연히 그를 미워하지 않으려고 대화 내내 벌벌 떨고 있었다.    

환자는 오히려 담담하다. 과잉진료를 안 하려는 것이니 고맙지 않냐고....

 

집으로 돌아오면서 참을 수 없는 불평과 불안을 계속 털어놓다가 문득 당사자는 얼마나 심란할까 싶어 맘 고쳐 먹고

저녁 내내 명랑모드를 유지하기 위해 부지런도 떨고 애교도 떨고... 그러다보니 어느새 소란스런 마음도 제 자리로 돌아오더군.

평소와 다름없이 선들바람 부는 앞산 산책 나란히 다녀오고 특별식이라고 준비한 닭죽도 한 그릇 비우고 시티헌터까지 보고 나서 남편은 잠자리에 들었고

나는 아직 잠들기 이른 시간이라 컴퓨터 앞에 앉아 있었는데... 한 시간쯤 지났을까?

 

갑자기 자고 있는 줄 알았던 남편이 내 뒤로 다가와 "왜 울어?" 그런다.

"누가, 내가? 나 안 울었는데?"

"자는데 어디서 우는 소리가 들리더라고...."

 

아무리 낮에 심란한 일이 있었지만 오후 내내 잘 놀다가 한밤중에 혼자 울다뉘....드라마를 너무 많이 보셨군요.

나는 별로 눈물이 없는 체질이다. http://blog.daum.net/corrymagic/10637673 가슴이 깨지게 아파도 그 통증이 눈물샘까지 도달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사실 나는 게임을 하고 있었다.

나는 심란하면 게임을 한다.  긴장감도 없고 아무 생각 없이 손가락만 움직이면 되는 단순한 게임. 다음 키즈짱에 있는 버블 슈터 같은....

아마 홀로 되면 나는 하루종일 게임만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서방님, 내가 울기를 내심 바라다가 꿈을 꾸셨나요? 아니면 내가 슬퍼할까봐 마음 조리던 끝에 환청을 들으셨나요?  

 

오늘 아침,

헉, 볼일을 보고 변기 물을 내리다가 나도 들었다. 

분명히 울음소리였다. 꺼~~이, 꺼~~이..

소화하기 힘든 덩어리를 겨우 삼키며 토하는 변기의 울음소리였다. ^^

지하 250미터로부터 끌어올려지는 산동네 상수도의 특성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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