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깐 경기도지사 보좌관과 경기도시공사 감사를 지내면서 공공부문의 업무를 살펴볼 기회가 있었다.
민간기업과 비교할 때 공공부문의 의사결정과 집행과정은 답답할 정도로 더디다. 기본적으로 법과 규정에 부합해야 하지만, 상급기관의 승인이 필요하고 때로는 지방의회의 승인도 필요하다. 사업과 행정의 일관성을 유지하기 위한 불가피한 측면이기도 한데 나름대로의 장점도 있다. 그런 점에서 공공부문의 업무는 필연적으로 비효율을 수반하게 되므로 공공이 해야 할 일을 엄격하게 제한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민간기업인의 눈으로 보자니 공공부문이 수행하고 있는 상당 부분의 업무들에 대해 과연 그 일이 필요한가 의문이 생기곤 했다. 효과 면에서 볼 때 별로 필요하지도 않은 일들이 구색 맞추기나 생색내기용으로 입안되어 중첩 진행되는 경우가 너무 많아 보였다. 중앙정부의 각 부서는 각 부서대로, 지방정부는 지방정부대로, 거기에 각각 별도로 산하기관까지 설립해서 중소기업의 해외마케팅을 지원한다면서 해외전시회 참가비용을 지출하고 상담실적이 얼마라고 자랑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대형병원이 몇 개나 되는 수원과 같은 도시에 도립의료원이 세워졌지만 제때에 시설투자도 이루어지지 않아 삼류병원으로 전락해버렸다. 이런 도립의료원이 도내에 6개나 된다. 하지만 그중 대부분이 오후에는 외래환자의 발길조차 끊겨 직원들이 놀고 있었다. 물론 민간병원에서 외면하는 생활보호대상자에 대한 의료행위 등 공공적인 측면도 있다. 그러나 모든 병원이 대형 적자로 인해 재정을 잠식당하고 있는 현실을 고려한다면 근본적인 해결책이 필요해 보였다. 게다가 기왕에 설립된 도립의료원들 대부분이 건물의 증축과 새로운 의료설비에 대한 투자를 요구하고 있었다.
사실 내가 근무했던 경기도시공사도 꼭 설립할 필요가 있었는지 의문이었다. 중앙정부의 산하기관으로 토지공사와 주택공사가 별도로 설립된 것이라든지, 역시 같은 역할을 하는 경기도시공사가 설립되고 또 기초단체에서도 평택도시공사 같은 공사를 경쟁적으로 설립하는 것은 공공기관 간의 관할 싸움에서 발생하는 비효율에 다름 아니다. 더구나 중앙정부나 지방정부 안에는 이러한 공사의 활동을 통제하는 조직이 엄존하고 있다.
또한 공공부문에서 벌이는 일들이 대체로 언론의 관심을 끄는 이슈성 사업에 치중되는 경향을 볼 수 있다. 특히 단체장이 선출직이 되다 보니 그런 경향이 강화된 듯하다. 장기적인 사업의 타당성과 경제성을 냉정하게 타산하기보다는 단기적으로 언론의 관심을 끄는 사업을 과대포장하여 선전하지만 이후 사업 실패로 귀결되거나 예산 낭비에 대해 책임질 사람은 없는 일들이 도처에서 벌어지고 있었다.
게다가 산하 공공기관에서 벌어지고 있는 은밀한 비리행위들은 가히 상상을 초월하였다. 공무원 사회의 모습은 확인할 기회가 없었지만 일정한 간격으로 순환이동되는 공무원 사회의 특성상 특정 부문을 제외하고는 상대적으로 양호하리라 생각한다. 그러나 산하기관들의 임원들은 2~3년 내외의 임기직이기 때문에 조직의 고질적 비리를 파악하기 힘들다. 조직 내 실력자들을 중심으로 하여 업체와의 유착, 인사청탁, 카드깡을 통한 공금유용 등의 비리행위가 각 분야에서 이루어지고 있었다. 도시공사의 감사로 재직하는 동안 구체적인 증거를 확보하여 중징계 처리한 경우만도 10여 건에 이르고, 정황은 분명하나 구체적 물증이 없어 보류한 경우도 적지 않았다.
공공부문이 반드시 추진해야 할 우선과제는 부패와의 전쟁이라고 본다. 공공부문의 부패와 비리를 척결하지 못하면 아무리 좋은 정책을 입안한다 해도 도로아미타불이 될 것이다.
민간기업인으로서 공공부문 사업에 대해 가장 부러웠던 것은 웬만하면 손실이 나지 않는 사업기반에서 사업을 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물론 공공의료기관처럼 민간의료기관과의 경쟁이 불가피한 사업들도 있다. 그러나 도시공사 같은 경우 토지의 독점적 수용권에 기초하여 사업을 수행하면서 적정이윤을 덧붙여 판매한다. 물론 토지구매 등에 필요한 막대한 자금은 은행차입으로 충당하고 그에 따른 이자는 모두 원가에 계상된다. 이처럼 공공부문의 대부분의 사업들이 독점적 권한을 부여받는 안전장치를 갖고 있다.
시장과 민간부문의 취약점을 보완하고 사회의 균형을 이룩하기 위하여 공공부문의 역할은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공공부문은 그 생리상 자신의 예산과 조직을 확대하려는 성향을 갖고 있기 때문에 방만하고 비대해지기 쉽다. 이미 우리의 공공부문은 지나치게 비대해져 있어 구조개혁이 필수적이다.
개혁을 위해서는 지금하고 있는 일들이 공공부문이 꼭 해야 할 일인가부터 검토해야 할 것이다. 불필요한 것을 과감하게 정리해가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고용, 복지, 안전 같은 새로운 공공부문의 수요에 부응하도록 역량을 재배치해야 할 것이다. 또한 시장과 민간부문과의 협력관계를 어떻게 설정해나갈 것인가에 대한 연구와 더불어 참신한 시도가 필요하다고 본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공공부문의 공정성을 담보할 수 있는 투명성을 확보해야 한다는 것이다. 공공부문의 부패는 나라를 망치는 지름길이다. 따라서 부패와의 과감한 투쟁은 정부가 지속적으로 추진해야 할 가장 중요하고 기본적인 과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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