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낑낑대며 올라왔던 gravier 길을 걸어내려간다.
맑은 하늘 시원한 바람이 종일 걸어도 다리 아프지 않을 거라고 꼬이는 바람에
원래 목적지로 삼았던 마티스 박물관이 어느 방향인지 따지지도 않고 무작정 내딛기 시작한 발걸음.
예쁘게 단장해놓은 남의 집들을 기웃거리며 걷다 보니 야트막한 산 하나를 나도 모르게 가뿐히 넘었다.
공중화장실에서 입장료 받는 아저씨들.
30분쯤 걸었을까? 프란시스코 수도원, 로마유적지, 마티스 미술관, 샤갈 미술관으로 이어지는 길이 나왔다.
수도원 앞 공원. 크게 손대지 않은 자연스러운 모습이 더 좋아 보였다.
공원에는 멋쟁이 빠리지엥의 면모를 일찌감치 보여주는 꼬마도 있고, 세계어린이 공통의 취미(코딱지 파먹기)에 탐닉하는 꼬마도 있었다. ㅋㅋ
마을 배경과 어우러져 퍽 인상적이었던 수도원 부속 묘지.
지대가 높으니 고인들이 더 하늘과 가까이 있는 듯 느껴지겠다.
마티스 박물관으로 갔는데 가는 날이 장날, 오늘이 화요일이군
프랑스의 대부분 박물관이 화요일은 휴관이란다. .
길 따라 내려가면 바로 샤갈 미술관이 있다고 했는데 거기도 당연히 문 닫았겠지.
이 동네가 부촌인가?
아님 프랑스 사람들은 다 이렇게 멋진 저택에서 사는 건가?
기차역 쪽으로 내려오니 서민대중적인 분위기로 바뀐다.
이부자리에 개까지 대동한 노숙자들이 적잖이 눈에 띄고 화려한 빌딩들 사이 골목에는 중국 물건을 파는 구멍가게들이 고개를 내밀고 있다.
기차역 쪽으로 내려가다가 마세나 광장 근처에서 시위대를 만났다. 노조탄압과 해고에 항의하는 공공부문노조의 파업시위라고 했다.
니스 시내의 대중교통이 멈춘 거리를 늙은 사람, 젊은 사람, 청소부, 간호사, 학생들이 함께 어우러져 노래하고 잡담하며 여유있게 걷는다.
유모차도 끌고 나오고 어느 대열에서는 봉고를 두드리고 춤을 추면서 흥을 돋구기도 하고...... 긴장감이라곤 눈꼽만큼도 없다.
시위의 목표를 물어보니 너도 나도 나서서 서투른 영어로 한 마디씩 한다. 사진 찍으라고 포즈도 잡아주고......
어떤 아저씨가 500유로짜리 지폐를 주길래 놀라면서 펴보니 전단지였다.
짐작컨대, 고용, ???에 대한 꿈, 노동조건은 우리들의 권리다, 뭐 그런 뜻인 듯?
경찰도 거의 눈에 안 띈다. 눈 씻고 겨우 발견했다는... ^^
시위대열이 최종집결지인 듯한 마세나 광장에 다다르자 모두들 선도차량 근처에서 유니폼과 플래카드 등 시위용품을 내려놓고 자연스럽게 삼삼오오 흩어진다.
시위에 참가하지 않고 있는 사람들은 노천까페나 분수대 옆에서 태양을 즐기고......
대중교통도, 병원도, 우체국도, 청소부들도 일손을 멈춰버린 불편한 날의, 편안한 하루가 흘러가고 있었다.
광장 끝쪽 분수대에서 좌회전하니 낮은 지대로 내려가는 계단이 나오고 계단은 좁은 골목길로 이어진다. 이 동네가 니스의 구시가지라고 한다.
빌라 쌩떽쥐뻬리가 있는 신식 주택가와 달리, 이곳 올드 니스는 소박하고 구식이다. 이탈리아 느낌?
과일과 꽃 시장 열린다는 데가 여기인 듯한데 정오가 지나서 그런지 거의 파장이다.
시위대열 따라다니다가 허기져서 죽을 지경이라 조각케익과 우유, 사과 하나를 사들고 해변가로 나갔다.
푸른 바다쪽에서는 서늘한 바람이 불어오고 솜털구름은 유유하다.
바다풍경 때문이었을까? 산책처럼 아름다운 시위 때문이었을까?
왠지는 모르지만 행복 에너지가 마구 차오르는 느낌을 견디지 못하다가 지나가는 아줌마에게 실없는 소리를 한다.
불어로 행복하다는 표현을 어떻게 하느냐고.....
아줌마는 영어를 못 알아들었고 나는 불어를 못 알아들었다.
그래도 상관없었다. 나는 행복한 내 마음을 누구에겐가 전하고 싶었을 뿐이었으니까. ㅎㅎ
내일은 니스 인근 마을들을 돌아볼 것이니 오늘이 니스는 마지막이구나 싶어 아쉬운 마음에 어두워질 때까지 싸질러다니다가
기차역 건너편 중국집에서 간만에 훌륭하게 한 상 차려먹고 돌아오니 에바가 나 기다리느라고 밥도 안 먹고 있더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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