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침 서울로 돌아가는 후배와 탑승 시각이 비슷해서 헤어지는 길이 덜 섭섭했다.
늘 혼자 다니다가 단짝과 붙어다녀보니 혼자 다니는 것과는 또 다른 내용들이 여행의 공간을 채운다.
지금도 더 생각나는 건 홍콩의 어디어디라기보다 그녀석과 지지고 볶으며 술잔 기울이던 일들이다. ㅎㅎ
자정이 가까운 시간에 도착하는데 교통편이 끊기는 거 아닐까 싶어서, 브리즈번 공항에서 가장 가까운 곳에 호텔을 예약해두었다.
날잠 자기에 제일 좋은 공항으로 손꼽힌다는 브리즈번 공항에서 여덟 시간 못 기다릴까, 지금에야 그런 생각이 나지만
열악한 홍콩의 숙박시설에서 고생할 셈이었던 당시로서는 나름 고액(한화 8만 원 가량)을 주고 예약한 호텔이다 싶어, 마음껏 샤워도 하고 이튿날 체크아웃 할 때까지 늘어지게 잔 뒤 브리즈번의 민박집으로 직접 찾아갈 생각이었다. 하지만 공항에는 뜻밖에도 나처럼 나중에 합류한 ㅅ선생이 기다리고 있었다.
시내까지의 택시비가 장난이 아니라고 차라리 공항에서 일행에 합류하자는 ㅅ 선생의 만류.
게다가 공항구역으로 치는 호텔까지도 택시비가 14불 나오는 걸 보고는, 호주 첫날 아침을 게으르게 뒹굴면서 맞아볼 셈이었던 내 계획은 접기로 했다.
Ibis라는 호텔은 내가 기대했던 럭셔리한 호텔과는 거리가 멀었다. 호주 물가를 몰라도 너무 몰랐던 소치. ^^
일단 도착해보니 굳게 닫힌 문 앞에 스탭 대신 self check in 기계가 기다리고 있었다.
예약번호 찍고 이름 찍고 한국의 주소까지 찍고... ㅠ.ㅠ 어렵사리 기계와 소통을 하여 방으로 들어가보니 딱 우리나라 여관방 수준.
우쨌든 눈깜짝할 사이에 호주에서의 첫날밤이 지나가고
호텔에서 제공해주는 유료셔틀로 어젯밤에 왔던 길을 몇 시간 만에 되짚어가 일행과 합류.
호주에서의 첫번째 관문, 차량 렌탈이다.
한 차에 다섯 명씩 타야 하는데 아무리 줄여서 들고 왔다 해도 배낭이 다섯 개, 거기에 텐트꾸러미들까지 합세하니 원래 계약했던 i20으로는 어림도 없다.
엘란트라라는 이름을 달고 있는 아반떼로 바꾼다. 렌트비가 한 대당 삼천 달러.
그런데 서울에서 런던 본사하고 계약했을 때와 다른 '예치금'이라는 조건이 나온다.
나중에 돌려받는다고는 하지만 낯선 땅에 발 닿자마자 낯선 얘길 들으니 영 미심쩍은지 연락이 여의치 않은 본사에 확인 한다고 두 시간 가량 잡아먹었다.
내 생각엔 호텔에 투숙할 때 보증금 맡기는 거나 마찬가지 아닐까 싶은데 대장은 본사와 계약을 했으니 본사에 확인을 해야 한다고 한다.
자기 혼자만의 일이었으면 대강 넘어갔을지도 모르지만 여럿의 일이 되다 보니 엄청 신중하다. 사무실 안에 들어간 건 세 사람이지만 밖에 있는 사람들도 같은 마음이 되어 잘 참아낸다. 예상밖의 무더위, 야간비행에 지친 짜증, 빨리 여행 첫날을 열고 싶다는 조급함, 지루함 등등.....
드디어 대장의 오케이 사인이 떨어지고 서울에서 가져온 네비게이션을 장착한 1호차를 앞세워 호기롭게 출발이다.
우리와 다른 오른쪽 운전이라 헷갈리기도 하겠지만 1호차가 자꾸 길을 놓치고 유턴을 한다.
사정을 모르는 뒷차에서는 과연 오늘중에 도착할 수 있을까? 긴장한다. (알고 보니 잭 하나가 불량이라 네비게이션 작동이 안 돼 지도를 보며 달렸다고 한다)
우여곡절 끝에 두 배의 시간을 들여 도착한 민박집은 작은 풀장까지 있고 대지만 삼백 평 정도 되는 저택.
두 아이들 공부 뒷바라지하러 온 지 7년차라는 기러기 엄마가 반갑게 맞아주신다.
마침 민박은 잠시 쉬고 있는 차라 열다섯 명 大부대가 마음껏 휘젓고 다니기에는 안성맞춤이었다.
(이때만 해도) 햇살은 따갑지만그늘에만 들어가면 시원해서 견딜 만하다(고 생각했다).
짐 풀고 급히 한 밥으로 요기를 하고는 장을 보러 나갔다. 이후 도시로 들어갈 때마다 랜드마크로 삼게 된 Woolworth로..... (호주다운 이름이군)
우선 차량들 간에 무전기처럼 사용할 휴대폰에다 꽂으려고 심 카드를 산다. 심 카드끼리의 통화는 무제한 무료란다.
박스에 든 5리터짜리 포도주가 20불이다. 호주에 왔으니 남부럽지 않게 안심(scotish filet)과 T-bone steak도 몇 킬로 산다.ㅋㅋ
한국식품점에도 들러 고추장, 쌈장, 신라면 등 비상식량도 푸짐하게 챙긴다.
그때만 해도 뭘 저렇게 챙겨야 할까 싶었는데 다니다 보니 그런 것들이 없었으면 우리의 고난의 행군이 어땠을까 싶다.
이 상점 주인이 정신적으로 좀 문제가 있느냐고 농담을 했더니 체인점이란다. ㅋㅋ
이 포도주 박스 안에는 귀퉁이에 꼭지가 달린 은박 자루가 들어 있다.
박스를 세워둔 채로 밖에서 꼭지를 열면 수도꼭지에서 물 나오듯 포도주가 콸콸......
그리고 벌어진 와인과 스테이크 파티.
마침 2012년의 마지막날이라 송년파티도 겸한다. 기타가 울리고 한국인 특유의 '한 곡씩 돌아가며 뽑기'가 이어진다.
이번 여행에서 처음 만난 멤버들이 절반 정도여서 조금은 서먹했는데, 적당한 음주가무의 도움을 받아 한국인 50대의 근엄함을 단번에 내던져버렸다. ^^
그리고 2013년의 새해가 밝았다.
시계바늘은 다섯 시를 가리키고 있지만 한국보다 한 시간이 빠르니 꼭두새벽이다.
그래도 잠 없는 평균연령 55세의 노익장들은 식전 산책에 나선다.
목적지는 이 동네에서 가까운 Coot-tha 전망대.
정갈한 아침 분위기에 꽂혀서 연신 셔터를 눌러대다가 일행을 놓친 나는 엎어진 김에 쉬어간다고 중턱에서 어슬렁거렸지만
가파른 꼭대기까지 올라갔던 사람들은 땀에 푹 젖어서 돌아왔다.(산악마라톤을 하는 대장님 덕에 이 빡센 식전 구보는 이후로도 거의 매일 실시되었다. ^^)
주인 아주머니로부터 즉석 마늘빵구이 비법을 전수받으면서 맛난 아침을 먹고
이어 점심으로 행동식을 준비한다. 밥 한 솥 지어 한국에서 준비해온 김자반과 소금, 참기름을 넣어 주물럭거리면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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