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 계획은 오늘 민박집을 떠나 골드코스트를 찍고 남쪽으로 내려가는 것이었지만, 캠핑 사이트 예약을 못했고 (1월 6일까지 호주의 공식 휴가기간이다) 골드코스트가 두 시간 이내면 닿을 수 있다고 해서 일단 오늘은 골드코스트 당일치기를 하고 내일 떠나기로 한다.
출발은 좋아서 자동차 전용도로를 시원하게 달려나갔지만 해변이 가까워오자 역시 차가 밀리기 시작.
예상보다 한 시간 정도 늦게 목적지인 Surfers Paradise에 도착했지만 주차장도 만원이다. 이리저리 헤매다가 근처 동네 골목길로 들어섰는데......
이 정도면 너무나 괜찮아 보이는 주차공간 아닌가 말이지.
하지만 예전에 뉴질랜드를 렌트카로 여행할 때 한가한 동네 골목에 세웠다가 견인당한 경험이 있는 멤버가 말린다.
되네 안 되네 논쟁을 하고 있는데 길 건너집 이층 베란다에서 어떤 아저씨가 손짓을 하며 우리를 부른다.
두 시간마다 단속 경찰이 다닌다는 거다. 그리고는 무료 공영 주차장을 알려준다.
참 착한 이웃 덕분에 기사님들은 안전한 공영주차장으로 이동하고 우리는 안심하며 해변으로 간다.
역시 소문난 휴양지답게 들썩들썩한 분위기. 삼십 층 가까이 되어 보이는 고층건물들은 대부분 호텔과 콘도다.
흰 모래, 끝없이 밀려오는 흰 파도, 눈이 시리도록 푸른 바다.
하지만 그 아름다운 바다를 눈앞에 두고도 어째볼 엄두가 안 난다. 너무나 살벌한 땡볕의 공격, 모래를 싣고 흩날리는 너무나 세찬 바람 때문에.
땀 뻘뻘 흘리며 간신히 탈의용 텐트 하나를 치고 바다로 들어가보니 이젠 파도가 싸우자고 덤빈다.
이곳은 영화 '폭풍 속으로'를 찍었을 정도로 높고 거센 파도로 이름을 떨친 해변.
별렀던 바닷수영은 엄두도 못 내고, 얕은 데서 '팔짝 뛰어 파도 넘기' 놀이나 하려고 했더니 어찌나 거세게 밀어대는지 고작 30분 뛰고는 기진맥진.
하긴 이곳에서 파도 타다가 허리 꺾인 사람도 있다 하더라고.
호주 사람들처럼 불타는 듯한 태양에 몸을 맡길 일도 없고....
결국 두 시간도 못 버티고 그 소문 짜한 해변에서 물러난다.
차 댄 곳을 못 찾아서 겨우 삼십 분 정도 헤맸는데도 기진맥진. 땡볕이 정말 무섭긴 무섭더라.
민박집에서 아이스박스에 넣어준 수박을 미친듯이 먹고 기운을 차려 다시 인근의 해변으로 이동.
듣기로, 호주에는 대자연과 하나 되고 싶은 자연주의자들이 적지 않아서 누드 비치로 지정해달라는 청원을 자주 낸다는데, 그러면 좀 외진 해변을 골라서 누드비치로 지정해준다고......우리가 도착한 곳이 그런 해변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이 해변에는 별다른 시설도 없고 피서객들도 드물고, 심지어 누드족들도 하나 없었다.
불타는 태양 아래 거센 파도에 부서져라 몸을 맡길 만큼 젊지 않은 우리에게 구경만 하는 바다란 김 빠진 사이다 같은 느낌?
왠지 불만족스러운 기분을 떨치지 못하고, 돌아오는 길 막힐 걱정을 미리 땡겨 숙소로 돌아온 시간은 오후 네 시.
여행길이라고 무조건 달릴 필요는 없다. 한가로운 꿀잠도 여행의 진미.
먼길 떠나기 전에 바닷바람에 절은 옷들 소금기도 빼고
떡 본김에 제사 지낸다고... 민박집 수영장 청소를 빙자하여 바다에서 못다한 수영 욕심도 풀고...
한국에 계시는 주인집 아저씨를 대신해서 이곳저곳 집수리도 해드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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