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씨는 쾌청. 여럿이 움직이다 보니 열 시 다 되어 길을 나선다.
학교에 간다는 민박집 딸네미를 따라 Queensland 대학으로 간다. 일단 학교에 차를 대어놓고 걸어서 시내 투어를 할 요량이다.
건물 꼭대기에 휘날리는 것은 국기, 대학기, 그리고 애보리진 깃발이다. (검정, 빨강, 노랑의 삼색기. 이 대학에 애보리진이 얼마나 될까 싶네)
이 대학에서 약학을 전공하고 올해 졸업을 앞두고 있는 딸네미, 참 엽렵하기도 하다.
고 1때 호주로 왔는데 한국에서 예상했던 것보다 공부도 인간관계도 쉽게 풀려 자기에겐 호주 유학이 진로를 열어가는 데 크게 도움이 된 것 같다고 한다.
올해 졸업반인 이 아가씨는 전공을 살려 약국에서 인턴을 하며 제 학비를 벌고 있다.
대학교 1학년인 아들네미도 (방학이라고) 아르바이트를 두 개씩 뛰고 새벽에 들어오는데도 아침이면 어김없이 식탁 차리는 일을 돕는다.
부자 나라에 정착하려면 그만큼의 댓가를 치러야 할 것이다. 이루 다 말하지 않는 사연 속에서도 그동안 헤쳐온 일가족의 고달픔을 느낄 수 있었다.
그 고달픔을 헤쳐가며 잘 자라준 아들딸들, 잘 키워낸 엄다, 그리고 한국에서 뒷바라지하고 있는 아빠까지도... 지난 7년간의 고생, 얼마든지 자랑해도 된다.
큼지막한 호수와 넓게 펼쳐진 아름드리 나무 숲, 자전거 전용도로까지 갖추고 있는 대학 구내는 제대로 조성한 공원 못지 않다.
곳곳에서 피크닉을 즐기는 마을 사람들 모습은 지역사회 멤버로서의 학교를 느끼게 한다.
공부하던 노트까지 떨군지도 모를 지경으로 꿀잠에 든 처자. ㅋ
대학과 바로 연결되는 선착장에서 City Cat을 탔다.
30여 개 정류장을 두 시간 정도 돌며 시내를 감싸고 흐르는 브리즈번 강변 곳곳을 보여주는데 싸고 편리해서 대중교통수단으로도 쓸 만 하겠다.
개인 요트도 꽤 보편적인 모양이다. 강변 여기저기에 개인용 선착장이 눈에 띄더라니......
살짜쿵 카메라를 겨누니 과도하게 포즈를 잡아주는 승무원 아줌마.
South bank에서 내려 Sun Beach 쪽으로 가니 예상했던 것보다 규모가 훨씬 큰 야외수영장이 나타났다.
모래사장도 길게 이어지고 파도도 살짝 치는 것이 Beach라는 이름을 붙일 만하다.
성탄절부터 1월 6일까지 공식 휴가라 그런가 브리즈번 시내 사는 애들은 모두 이리로 모여든 모양.
이 징그럽고도 신기하게 생긴 요녀석의 이름은 Ibis란다.
호주 첫날밤 묵었던 호텔 이름이 Ibis였던 걸 보면 호주에나 있는 특별한 새가 아닐까 싶다.
이 녀석 꽁무니 따라다니며 사진 찍다가 그만 일행을 놓쳤다.
Sun Beach 주변을 세 바퀴나 돌며 찾아보다가 구조요원에게 물어봤다. "나처럼 옷 입고 다니는 사람들 못 봤냐?"
그러자 구조원이 바로 손가락을 들어 가리키는데......그렇게 내 눈엔 안 보이던 일행들이 거짓말처럼 눈에 들어온다.
알록달록 등산복 입은 무리들이 아득하게 먼 데서 씩씩하게 걸어오고 있다. ㅋㅎㅎ
햇빛 피한다고 긴 바지 긴 팔에 챙 넓은 모자도 모자라 트래킹화(발품 팔아야 하니)까지 갖춘 우리 일행의 행색이라니......
탱크탑에 핫팬츠, 아니면 하늘하늘한 선 드레스 한 조각 걸치고 쪼리 끌고 다니는 호주 사람들 속에서 확실히 튀긴 한다.
이 튀는 행색 때문에 벌어진 이 날의 에피소드 하나.
공원을 걷고 있는데 한 떼의 청소년들이 오더니 말을 건다.
"악어 찾아? 악어 저기 있어."
"진짜? 어디, 어디?"
인공비치에 악어가 어딨나. 우릴 놀린 거였다. 악어 사냥꾼 행색이라는 건지... ㅠ.ㅠ
(동양인이라고 얕잡아 놀려먹은 거라고 분개하는 일행도 있었다만... 걔네가 웃긴다는 데 어쩌겠나. 같이 웃고 말아야지. )
싸온 김밥에 어울리게 잔디밭에다 판을 벌인 것까지는 좋았는데, 퀸즈랜드 대학에 파킹해놓은 차를 가지러갔던 일행이 사온 맥주가 문제였다.
보안요원이 오더니 인상을 쓰며 여기 영어 할 줄 아는 사람 있냔다.
방금 꼬마녀석들에게 놀림당한 기분을 얹어 "우리 다 영어 하는데?" 하고 쏘아붙이니까 여기는 술 못 먹는 구역이라고 고기 굽는 구역으로 가서 먹으라고 한다.
호주가 '규칙'을 엄청 내세우는 동네라고는 하지만 웬지 기분이 쫌 그렇다.
곧 옮기겠다고 보안요원을 보내놓고는 작업에 들어갔다.
거반 다 마신 주스를 마구 털어넣고 병을 비운 뒤에 그 병에다 맥주를 채우는 꼼수를.....ㅋㅋ (옆에 있는 쓰레기통에도 빈 맥주병들이 많던데 뭐...)
호주 사람들 참 운동 열심히 한다. 걷거나 뛰거나 자전거 타는 사람이 정말 많다. 그것도 한낮의 땡볕 아래서....
우리도 거의 경보 모드로 Goodwill Bridge를 건너 시립 식물원으로 간다.
처음 보는 맹그로브 나무.
물 위로 쓰러진 나무에서 무수하게 잔가지가 뻗어나온 모습이 놀랍다. 놀라움을 넘어 두려움조차 느끼게 하는 생명력.
무슨 얘기들을 나누고 있을까?
아름다운 삼, 사십대......라는 단어가 떠오르면서 뜬금없이 울컥.
식물원 입구를 지키고 있는 에뮤와... 아마도 애보리진?
나무의 끝에서 끝까지 50보 정도 되려나?
30년이나 같이 살았으면서도 언제나 소년소녀 커플 같은 셋째 시누이 내외.
작은 얼굴 때문일까, 자꾸 카메라를 들이대고 싶게 만드는 대장님.
식물원을 나오니 다시 무슨무슨 대학이다.
이제 시내 중심가를 뚫고 나가서 강변을 따라 차를 세워둔 곳까지 10킬로쯤 걷는다.
지하에 버스 환승역이 있는 퀸즈몰을 거쳐 까페거리를 거쳐.... 사진 찍다가 또 일행을 놓쳤지만
낮에도 전과가 있는 몸, 어차피 일탈만옥이라는 별명을 면하기는 틀렸다 싶어 붉게 어두워져오는 하늘을 보며 느긋하게 걷는데
에공, 두 사람이 일행과 떨어져 나를 애타게 찾고 있네그려. (동행이란 이래서 번거롭지만 훈훈한 것이다. ^^)
우리 나라에선 커피전문점에 저렇게 머리 허연 커플이 손 잡고 입장하면 십중팔구 호기심의 눈길을 받을 듯.
호주에서 연말연시는 파격세일의 계절.
50%, 75% 세일 광고가 부지기수이고 특히 이월상품들을 박스째로 내놓고 boxing day라고 써붙인 매장들이 여기저기서 고객의 발길을 잡는다.
색깔 고운 순면 남방이 3달러! 양털 달린 양가죽 어그부츠가 단돈 20달러!
남반구에서 제일 크다던가... 하는 카지노.
홍콩행을 함께했던 후배가 꼭 가보라고 추천하던 곳이건만 기다릴 일행들 때문에 땀 뻘뻘 흘리며 지나친다.
민박집으로 돌아오니 밤 열 시가 다 됐다. (그 시간에 다시 시작된 스테이크 파티! 정말 힘 좋은 중년들이다.)
그래도 일부 구간을 유람선으로 돌았기 망정이지 두 다리에만 의지했다간 단체로 몸져 누웠을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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