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들기 시작한 민박집과 오늘로 이별이다. 이제 본격적으로 시작될 캠핑 생활에 대한 기대를 안고 호주 최동단에 있는 바이런 베이를 향해 출발.
어제 달렸던 길을 되짚어 세 시간 정도 달려서 '쿡 선장 등대'에 도착하니 어제 보았던 밋밋한 해변과는 다른 드라마틱한 풍경이 와락 달려든다.
탁 트인 하늘과 바다. 가슴이 뻥 뚤리면서 저절로 터져나오는 탄성을 금할 수가 없다.
이런 곳에서는 비됴 카메라를 360도 돌려야 하는 건데......
전망대에서 가파른 계단을 따라 이백 여 미터 내려가야 저 멋진 최동단 곶에 도달할 수 있는데 갑자기 몹시 삐끗거리는 발목.
'위에서 바라봐도 멋지다 뭐......' 아쉬움을 달래며 연신 카메라 셔터를 눌러댄다. 그래봐야 똑같은 사진이란 걸 알지만 어쩔 수 없이. ^^
물빛은 눈이 시리도록 푸르고 절벽에 부딪친 파도는 바닥까지 쓸어 뒤집으며 눈부신 포말을 만들어낸다.
절벽과 이어진 조금 완만한 해변에서는 써핑과 스노클링이 한창이고 하늘엔 행글라이더가 날아다닌다. 꿈 같은 풍경이다.
멋진 풍경을 등지면 누구나 저런 포즈로 사진 찍고 싶을 것이다. ㅎㅎ
그래서 여사님들도 한 컷. 다같이 뿌잉뿌잉!
아쉬움을 뒤로 한 채 다시 해안도로를 따라 달리다 보니 주가 바뀐다. 뉴사우스웨일즈 주다.
시간도 한 시간 더 앞으로 땡겨진다. 더구나 썸머 타임이 적용되어 한 시간이 더 앞으로 돌려야 한다니 엄청 헷갈린다.
무슨주였던가에서는 거기서 또 30분이 늦어지기도 해서 호주에 있는 내내 헷갈렸다. (아무리 시간 차이가 나도 같은 정부 관할이라는 이유 때문에 공식적으로는 같은 시간을 쓰는 중국과는 다르다). 하지만 지금이 한국 시간으로 몇 시인지 걱정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어차피 우리가 일어나는 시간이 일어날 시간이고 잠 자는 시간이 잠 잘 시간이라는 점에는 변함이 없으니까. ㅎㅎㅎ
야영장 찾는 일이 급했다. 론리에 나와 있는 야영장을 차례로 훑어간다.
Yamba Holiday Park는 물론 유명 체인점인 Big 4에도 없고.... 멀쩡한 집 놔두고 캠핑장으로 몰려나온 호주 사람들이 원망스러울 뿐.
퀸즈랜드 번호판을 단 세 대 차량이 줄줄이 들어갔다가 줄줄이 나오기를 몇 차례. 날은 어두워지고... 클났다.
해변에서도 야간에는 텐트를 칠 수가 없다. 공원마다 바베큐 굽는 곳도 있고 식탁도 있고 수도도 화장실도, 그리고 널찍한 녹지도 있지만 그림의 떡이다. "No Camping, Penalty Apply"라는 간판이 우리를 노려보고 있다. 물경 2000달러란다. .
더 밤이 깊어지기 전에 민생고부터 해결해야 한다.
마을 중심가의 공원에서 그 와중에 고기 굽고 포도주를 따르고(먹을 게 그것 밖에 없어서리 ㅋㅋ) 남은 고기 잘게 잘라 쌈장을 넣고 밥까지 볶아먹는다.
심란한 마음 만큼이나 심란한 사진 한 장. ㅋㅋ
이제 어디로 가야 하나, 다시 차를 몰고 막연하게 마을 외곽 쪽으로 나가보지만 모텔들조차도 모두 만원. 그야말로 정처없는 발길이다.
경찰서에 가서 도움을 청해볼까, 저기 눈에 띄는 학교에 가서 운동장 한 귀퉁이만 빌려달라고 사정해볼까, 의견이 분분하지만 모두 잘 알고 있다. 사적인 영역이 투철한 호주에선 안 통하는 짓이라는 걸.
문 닫은 주유소 옆에 차를 세우고 열띤 토론중인데 갑자기 지나가던 동네 청소년들이 차량에 뭔가를 던지고 도망친다.
계란세례였다. 아마도 최근에 뉴스에서 거론되던 동양인에 대한 테러의 일종?
눈 깜짝할 사이에 끝나버린 깜찍한 테러였지만 닦아도 닦아도 지워지지 않는 달걀 비린내처럼 일행의 분노와 불안도 쉽게 지워지지 않는다.
(나는 그냥 어이없는 웃음만 나오던데..... 내가 너무 대범한 건가? 둔한 건가?)
이미 11시 가까운 시간, 작은 소동까지 겪었으니 오늘은 이만 한풀 꺾기로.
상대적으로 안전한 주유소 옆에다 여차하면 튈 것을 감안, 철거가 간단한 텐트 두 개만 쳐서 여사님들을 모시고 남자들은 노숙이다.
여자라는 특수신분 때문에 비교적 편안한 잠자리를 차지하긴 했지만 편안한 잠 자기는 쉽지 않다. 낮에는 한 대도 안 보이던 바퀴 스무 개 달린 대형 트레일러가 밤새 천둥치는 소리를 내며 오고가는데 그 기세가 어찌나 사나운지...... 꼭 내 텐트로 달려드는 것만 같다.
하늘을 지붕 삼아 침낭을 깐 남자들은 맥주와 생라면 안주에 의지해서 날밤을 새우는 모양이다.
풋잠에 들었다가 깨어보니 아직 깜깜한 새벽 4시. 다행이다, 사적인 용무를 해결해야 하니......
손전등에 의지해서 풀숲을 헤치고 들어가 볼일을 보다가 문득 하늘을 올려다보니 오, 찬란한 별빛!
불면의 밤을 보내고 새벽 추위에 벌벌 떨며 도둑용무를 보는 신세지만 그 별빛 하나로 내 마음은 다시 천국을 되찾는다.
남십자성은 어디며 오리온 자리는 어딘고. 평소 북쪽나라에서 보던 것과는 많이 다른 별자리를 헤아려보며 상념에 잠겨 있다 보니 멀리서 동이 터온다.
어느새 일행들도 일어나 자리를 턴다. 6시도 채 안 되어 출발이니 이거야말로 야반도주 아닌가베.
그런데 10분도 채 안 가 Rest Area가 나타난다. 장거리 운전자가 차를 세울 수 있는 공간으로 여기선 텐트를 쳐도 된다. 어젯밤에 몇 바퀴만 더 굴렀어도!
편의점과 까페도 있다. 커피 몇 잔 시켜놓고 완전히 제 집 찾은 주인인 양 퍼져 앉은 노익장들... ㅋㅋ
화장실에서 고양이 세수도 하고 충전도 하고...... 심지어 라면까지 끓여먹으면서 정상적인(!) 아침을 맞는다.
앗, 안 돼... 아직 세수 전이란 말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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