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목적지인 시드니까지 500킬로이니 도중에 하룻밤 더 묵어야 하는데, 암만해도 해변도시에서는 캠핑 사이트를 구하기가 쉽지 않을 듯하니
차라리 산으로 들어가기로 한다.
Koff Harbor 지나고 Taree 지나고 Old bar beach 지나고, 그 마을들 중 어디선가에선 차를 멈춰 점심 보따리를 풀고......
지난 밤 괴성의 실체.
전국 고속도로를 누비는 저 물건들이 다 소비된다는 생각을 하니 인간사회가 정말 대단한 유기체라는 실감이......
Reserve라는 간판이 붙은 지역은 장거리 운전자들을 위한 쉼터.
드넓은 녹지 위에 화장실(가끔은 샤워실까지 딸린)과 식탁, 그리고 사진 속의 파란 통(나도 짐작으로 알아낸 건데, 뭘까~~요?)을 갖추고 있다.
무료로 운영되는 편이시설이 이렇게 깔끔하게 관리되고 있다니, 호주가 복지국가라는 사실을 새삼 실감한다.
캠핑족들은 이렇게 숙박시설을 끌고다닌다. 아주 흔한 광경이다. 부러우이.
오늘밤 숙박지가 어디가 될지는 모르지만 장은 무조건 봐야 한다.
Glouscester 시내에서 이번에는 woolworth가 아닌 Coles에 차를 세우고 엄청나게 사들인다.
쇠고기, 야채, 포도주, 우유, 주스, 빵 등 늘 기본적으로 사는 품목 외에 오늘은 세트당 3불 하는 플라스틱 식기 15세트와 냄비, 프라이펜, 부르스타, 개스 등 살림살이 일습이 이미 꽉 차 있는 승용차 어느 구석엔가 꽉꽉 쳐박힌다.
호주 사람들 정말 복권 좋아하나는 모양이다. 얼핏 봐도 열 종류가 족히 넘는다.
카지노 출입도 여삿일이라고 하던데, 요행을 바라는 게 호주 사람들의 보편적인 정서인가? (노다지가 많은 나라다 보니?)
다시 산 속으로 달리기 시작이다.
론리에서는 분명히 여기 어디쯤에 야영장이 있다는데 가도가도 끝이 없다. 포장도로는 진즉 끝나버렸고... 설마 오늘도 노숙?
암만해도 길을 잘못 들은 것 같아 차를 세우고, 소와 말이 뛰노는 목장 사이로 뻗어있는 비포장 도로를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는데
우리 뒤를 따라오던 차가 함께 서더니 도와줄 일이 있느냐고 묻는다.
고맙기도 하지! 이 친절한 웨일즈 할아버지네도 캠핑장으로 가는 길이란다.
야호! 용기백배하니 험한 길도 문제없다. 먼지를 듬뿍 뒤집어쓰고 개울을 네 번이나 건넌 끝에
드디어 Glouscester Caravan Park 도착.
인간이 살아가는 데 있어서 안전한 잠자리 한 켠 마련한다는 게 이렇게 큰 비중을 차지하는구나.
뒷날 묵었던 모든 사이트와 비교하자면 시설 면에서 최고는 아니다.
그러나 지금까지도 그리울 정도로 이 야영지가 유난히 생각나는 이유는 아마 첫 야영이어서 그럴 것이고,
또 하나, 이튿날 아침 캠프사이트를 넓게 감싸던 햇살의 품 때문이었을 것이다.
새 소리, 물 소리, 활짝 핀 꽃들, 향긋한 풀 냄새, 신선한 햇살....
햇살 좋은 날의 아침 산책길의 즐거움은 이렇게 일일이 열거할 필요가 없다. 그저 '통째로의 행복' 그 자체니까.
아침 산책길에 마주친 왈라비.
캥거루인 줄 알았는데 캥거루보다 작은 요녀석들은 캥거루와는 다른 종으로 분류되는 '왈라비'란다.
'캥남 스타일!'
동양 사람들이면 다 한국 사람들이라고 생각한 걸까?
숲속에서 놀던 아이들이 혼자 산책하던 나와 눈이 마주치자마자 말 한 마디 섞기도 전에 일단 말고삐 쥐고 겅중겅중 뛰기 시작한다. ㅋㅋ
애들레이드 근교에 산다는 간호사 잉그릿과 전기 기술자 테리가 자기 캐러밴으로 초대했다.
밖에서 보기보다 꽤 넓은 공간. 아기자기한 살림살이가 두 사람의 소탈한 성품을 말해준다.
혼자였다면 끓여주는 커피 한 잔 마다 할 이유가 없지만 아침 일정이 바쁜 일행 속에서 또 '일탈만옥'이 될까봐 서둘러 돌아나온다.
다시 떠나야 할 시간.
혹여 차 바닥 잠길까 불안한 마음으로 건너왔던 개울도 낯이 익으니 보너스트랙 같은 즐거움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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