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일기/오세아니아

苦中作樂 7 - 시드니

張萬玉 2013. 3. 5. 12:30

예전에 쓰다 밀어둔 호주여행기(2013. 1) 이어서 쓴다.

설마 전편이 궁금하신 분들은 카테고리에서 '호주' 찍어서 처음부터 보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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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무지 눈꺼풀이 내려앉아 견딜 수가 없다. 일종의 멀미란다.

시드니를 90킬로 남긴 지점에서 풀밭 위 점심을 먹고, 다시 분노의 질주 끝에 오후 네 시가 다 되어서야 시드니 입성.

휴양도시 느낌의 브리즈번과는 확연히 다른, 다문화적이고 번잡한 첫인상. 생각보다 차들이 많지 않다.

Commonwealth 거리에 있는 오아시스 호스텔에 짐을 부린다. 4인실에 27불, 8인실 19불. 휴가기간이라 평소의 두 배 가격이란다.

다른 호스텔들에 비해 30% 정도 싼 건 좋은데 시설이 낡고 좀 지저분하다.

운영시스템이나 분위기는 괜찮다. 주로 워킹홀리데이를 마치거나 시작할 애들이 머무는 곳인 듯.

와이파이가 팡팡 터져 오랜만에 카톡과 서핑을 즐겼다.

 

장 보고 밥 해먹을 시간이 없으니 가까운 차이나타운에서 저녁을 먹기로 한다.

공금에서 지급해준 10호주불씩으로 알아서 골라먹으라는데, 메뉴도 다양하고 먹음직스런 때깔 하며...황공할 정도로 싱싱한 해물요리들!

네것 내것 서로 뺏어먹는 화기애애한 저녁상을 물린 뒤, 머리 위로 오가는 모노레일 노선을 따라 항구까지 걸어갔다.

 

여기도 띵타이펑이......

 

한여름의 크리스마스!!

 

현대 불교를 통해 내면의 평화를 추구하는...... '토크 콘서트'? 

 

불 밝힌 하버 브리지.

이 다리를 한 번 보수하는 데 1년이 걸린다는 얘길 어디서 들었다. 양쪽 다리 끝에서 한 사람씩 올라가 꼼꼼하게 둘러보는 식으로.......믿거나 말거나.  

 

 Rock 입구의 포장마차형 술집

 

 

둘째날 아침. 서대장의 지휘에 따라 오늘도 왕복 8킬로 아침구보로 하루를 여는데 

보나마나 20킬로 안팎이 될 오늘의 시티투어 일정을 소화하려면 무릎을 좀 아껴줘야 할 것 같아서 나는 슬그머니 빠졌다.

 

오늘은 대대적으로 먹거리를 충당해야 하는 날. 일동 시드니마켓부터 다녀온 뒤에 자유일정을 갖기로 한다.

센트럴역까지 걸어가서 전철을 타고 홈 부쉬 역(한인 밀집지역이란다)에서 내렸는데, 사실은 다음 정거장인 플레밍턴 역에서 내려야 했다.

사정없이 내려꽂히는 땡볕을 고스란히 맞으며 단체구보. 호주살이 25년차라는 교민 할머니가 준 잘못된 정보 때문이다.   

 

 

 

저기에 낙서하려고 전철 지붕으로 기어올라갔을까?

     

 

시장은 상상 외로 컸고 상인들 대다수가 인도, 중동, 중국 이민자들로 보였다.

먼저 들어간 건물 안쪽 상가에 싸구려 공산품들만 쌓여 있어서 실망스러웠지만, 대강 한바퀴 돌고 바깥쪽으로 나오니 

농수산물 시장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풍성하게 쌓인 싱싱한 야채와 과일들이 말도 안 되는 가격에 팔리고 있어서 깜짝 놀랐다.

감자 한 박스에 5호주불, 양파 한 자루에 3호주불...... 일요일 오전만 가능한 떨이가격이란다. 그래서 이 시장이 '선데이 마켓'으로 입소문을 타게 된 것 같다. 

 

 

이런 게 대박이다. 망고 한 박스 12호주불(만 오천 원 정도)에 사서 즉석에서 해치웠다. ㅋㅋ 

아지매들이 좋아한다고 체리도 한 박스, 감자 한 자루, 양파 두 자루, 브로콜리......

내일부터 블루마운틴 지역 캠핑이 시작되기도 하지만 그보다도 욕심에 눈이 뒤집혀서, 차도 없이 나선 장보기 길에 겁도 없이 몇 박스를 챙기긴 했는데

저 저 저!!.... 짐들을 다 어디에 실으려고! 아니, 그 전에 숙소까지는 어떻게 옮긴다니?      

 

점잖은 신사숙녀 여러분이 양파자루에 감자박스들을 한 가슴씩 안고 줄줄이 플레밍역까지 걸어오는 장면이 참 볼 만했다.

 

짐을 내려놓고 시드니 항구 쪽 관광지 구경을 나섰는데, 일요일을 맞아 넘쳐나는 인파 속에서 자의반 타의반 혼자가 되었다.  

 

   

 

 

내 또래의 뇌성마비 화가아줌마.

공교롭게도 그녀와 나는 비슷한 시기에 비슷한 원인으로 남편을 보냈고

남편의 부재를 잊기 위해 그녀는 집안이 아니라 사람 많은 거리에서 그림을 그린다고 했다. 

물감 범벅이 된 그녀의 손은 얼음처럼 차가웠다. 그녀의 손을 잡다가 나도 모르게 갑자기 울컥, 주체를 못해서 잠깐 울었다.

나처럼 눈물 희박한 인간이 처음 만난 사람 앞에서......ㅎㅎ 지금 생각해도 멋적기 짝이 없는 장면.

여행이란 게 사람의 감성지수를 한껏 높여놓는 모양이다. 

 

 

서큘러 키 건너편 쪽 동네 Rocks. 호주로 유배된 죄수들이 바위 위에 세운 마을이다.

선술집들로 유명한 곳이지만 술과는 별로 인연이 없는 나는 상가 뒷골목을 누볐다. 

 

 

 

여기가 뭔가 역사적으로 의미가 있는 골목인 모양인데, 잊었다.

어쨌든 그늘과 빛이 내려앉은 골목은 이 집들을 짓고 골목을 만든 사람들을 상상하게 만든다.

 

그래서 이 평범한 골목에서 웨딩촬영까지 한다. 

 

 

안양유원지에도 독일작가가 맥주박스로 지은 집이 있는데......

건조한 지역이라면 그렇게 집을 짓고 살아도 상관없겠다. 트루판의 량팡(벽돌을 얼기설기 놓아 만든 포도 말리는 창고)처럼...... 채광 통풍 최고일 듯.  

 

짐은 간단할수록 좋다. 정주민일 경우에도 마찬가지.

이게 내 소신이지만, 가정을 이루고 살다 보니 소신을 따르기가 쉽지 않다.

 

이 동네에선 라틴 풍의 음악과 요리가 대세. 태양과 생음악과 웃음소리가 넘쳐난다.

나도 잠깐 주저앉아 코로나 한 병 비우고......

 

 

오페라하우스에서 보타닉 공원으로 넘어가는 길 

 

 

 

자동차극장인 모양인데?

 

 

 

 

 

 

 

보태닉 가든을 나와 무슨무슨 병원, 무슨무슨 성당, 하이드 파크, 의회 건물, 센트럴 역까지는 잘 걸어왔는데

도보로 10분 거리에 있는 숙소를 못찾아서 두 시간 가까이 헤맸다.

제법 길눈이 밝은 편이라고 자부하는 나도 방향에 홀려 뱅뱅돌이를 시작하면 속수무책이다. 세비야에서도 새벽 2시까지 헤맨 적이 있지. ㅎㅎ

골번, 엘리자베스 거리 표지판과 백패커즈 어커머데이션 간판을 이정표 삼아 걸어봐도 나온 건물 도로 나오고 도로 나오고......

어떻게 된 게 우리 숙소 앞 길을 아는 사람도 드물고 길을 알려주는 사람들 말도 다 틀렸다.   

택시를 타면 간단하겠지만 나중엔 오기가 나서 입에 단내가 날 때까지 인근의 모든 골목을 누빈 후에야 숙소로 돌아올 수 있었다.

일행들이 눈이 빠지게 기다리고 있었다. 한 시간만 더 기다려보고 안 오면 신고하자고면서......

근거 없는 자신감으로 지도도 없이 나간 벌 톡톡이 받았다. ㅎㅎㅎ

 

 

이튿날 아침, 블루마운틴으로 들어가는 길에 들렀던 본 다이 비치.

영화를 찍어서 유명세를 탄 거지 특별한 인상을 남길 만한 해변은 아니었다. 

주차장 옹벽에 길게 그려진 그래피티가 더 기억에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