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일기/오세아니아

苦中作樂 8 - 블루 마운틴

張萬玉 2013. 3. 5. 12:30

 

블루 마운틴 인근 마을 카툼바에 도착한 시간은 이미 오후 한 시. 사방이 땡볕으로 하얗게 타들어가고 있다.

론리에 나와 있는 야영지를 무작정 찾아가니 아니나 다를까 자리가 없다. 우리 텐트가 한두 동이라면 모를까 일곱 동이나 되니 뭐.

나무 그늘 아래서 준비해온 주먹밥으로 요기를 한 뒤 일단 잠자리부터 찾기로 한다.  

 

 

서대장의 지휘에 따라 구불구불 산길을 돌아서 Melonga 계곡으로 들어간다.

바쁜 걸음만 아니라면 당연히 차 세우고 걸어가야 하는 짙은 숲길을 아까워하며 휙휙 지나쳐간다.

커브가 꽤 심한 길인데도 볼록렌즈 하나 없다.

 

 

이런 울타리는 동물들이 마구 돌아다니는 것을 막기 위해 설치한 것이기 때문에 그냥 열고 지나가면 된다.

 

이런 철조망과 사다리가 사유지 표시인데, 단순 통행은 허락된다.   

 

Six Foot Track의 트레킹 시작지점까지 와보니 야영이 허락된 곳이 몇 군데 있긴 하지만 물을 얻을 만한 데가 없다.

그나마 화장실이라도 있는 Old Ford Reserve란 공터에 텐트를 치기로 했다.

일단 하루 자보고 웬만하면, 땡볕 아래 이리저리 옮겨다니느니 불편해도 여기서서 버티자는 의견이 대다수. 다들 너무 지쳤다.   

차량 하나가 카툼바까지 나가 물을 몇 통 사왔지만, 식구가 많다 보니 밥 끓여먹기에도 빠듯해 보이는 물에 손 대는 사람은 없다.

양치만 하고 세수는 물티슈로...... 행색은 그래도 먹는 것만큼은 남부럽지 않다. 이 와중에도 스테이크와 포도주로 포식이다. 

 

야영지 바로 앞에 개울이 흐르지만 너무 오염되어 그림의 떡이다.

 

다음날 새벽, 동이 트기도 전에 서대장은 오늘도 추종자들을 인솔하여 식전 구보를 나간다. 

어제 봐둔 Six foot track 8킬로 트레킹이란다.

오늘 블루마운틴 계곡 트레킹을 염두에 둔 이 엄살쟁이는 나홀로 산책으로 대체.

예쁜 새와 나비. 풍성한 햇빛을 받으며 초원을 거니는 것만으로도 행복해지는 순간.

사람은 언제까지 이런 행복 속에만 거할 수 있을까?

그럴 수가 없으니 좋은 곳에 살면서도 여행을 다니는 것 아닐까?

 

인적이 드문 이 마을에 웬 우편함들이...... 이미 구실을 잃은 것 같지만 임자는 있는 듯.

 

아침식사 후 블루 마운틴 구역으로 이동, 에코 포인트 전망부터...... 

 

 

이어 계곡 쪽으로 방향을 틀어 '헨리왕자의 절벽 트레킹' 코스로 접어든다.

 

에코 전망대에서 내려다보던 세 자매봉을 이제는 뒷배경으로 하고 사진 찍는다.  

 

  

열대우림지역에서 볼 수 있는 나무들도 많지만 듣던 대로 유칼립투스 나무가 상당히 많다.

'블루 마운틴'은 이 나무에서 흘러나온 기름입자 때문에 파랗게 보인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는데 숲에 들어가니 정말 사방이 푸른 안개가 낀 것 같다. 

 

 

폭포는 길지만 물이 적어서 아련한 물보라만 일으킬 뿐이다.

 

절벽을 끼고 가는 길이니 당연히 오르막 내리막을 피할 수 없지만 아름다운 풍경에 홀려 힘든 줄도 모른다.

물 없는 야외부엌에서 어렵사리 제조한 샌드위치로 풀밭 위 점심을 먹고 다시 출발.

 

숲이 깊어서 은근히 야생동물과의 조우를 기대했지만, 겨우 요 한 녀석밖에 못 만났다.  

유칼립투스 나무도 많은 이 숲에서 코알라라도 한 녀석 마주치면 두고두고 자랑질할 꺼리가 생길 텐데.. ㅎㅎ   

(코알라의 주식인 유칼립투스 잎에는 수면제 성분이 들어 있어서 코알라가 그렇게 잠이 많다고 한다. 그러니 보호 차원에서 동물원으로 모시는 모양.)

  

사진을 찍다가 어느 순간 혼자가 되었다. 슬며시 기뻤다.

이런 공간을 나홀로 누려보고 싶었다. 나 대신 가방 던져놓고 기념 컷! 

 

장가계 어느 봉우리 아래 숨어 있는 느낌..... 왜 나는 숨어 있기를 좋아할까.

이미 일행으로부터 한 번 경고를 받은 바 있다. '일탈이 이탈 되고 그러다 해탈한다'고....... ㅎㅎㅎ 

 

 

하지만 트렉이 곧 끝나 달콤한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헌데, 저건 뭐냐?

계속되는 건기로 인한 산불예방을 위해 블루마운틴 공원구역을 잠정 폐쇄한다는 공지문이다.

집행 일시가 오늘 오전 10시부터인데 우리가 들어간 직후에 붙인 듯하다. ㅎㅎ 정말 운이 좋았다. 

 

 

큰 길로 나와 집결장소인 에코 포인트 쪽으로 걷는데 정말 무시무시한 땡볕이다.

이 구역을 돌아다니는 이층버스를 탈까 하는데 저 아래 발치에서 내 시선을 잡아끄는 하얀 스투파(남방불교식 불탑)

작은 절이었다. 서양식 감각이 들어가서 그런지 절이라기 보다 명상센터 같은 분위기.

 

 

 

다시 땡볕 속에서 걷다가 오랜만에 히치 하이킹. (옛날 솜씨 녹슬지 않았다. ㅋㅋ) 

집결지인 에코 포인트 매점으로 돌아와보니 숲속에서는 쌩쌩하던 사람들이 땡볕에 녹초가 되어 '맥주, 맥주!!'를 애타게 외친다.

수퍼에 들러 시원한 맥주를 사가지고 식기 전에 마시겠다고 서둘러 텐트로 돌아왔건만......하늘도 무심하시지, 우리를 기다리는 것은

텐트 마다 붙어 있는 경고장이었다.  '해 지기 전에 철수하라'는......물론 산불 때문이다.

해는 곧 떨어지겠고 갈 곳은 없고......

간절히 그리던 씨원한 맥주타임도 걷어치우고 우리는 진땀을 흘리며 텐트를 걷는다.  

근처 야영장이란 야영장에 다 전화를 걸어보던 서대장의 출발신호가 떨어져 그나마 다행히었다. 

 

Lithgow Holiday Park. 샤워장, 주방......뭐 하나 빠질 것 없는 캠핑장이 10달러밖에 안 한다.

이 천국 같은 곳을 두고 우린 어딜 헤매다닌 거야!

  

부모님을 도와 캠핑장 구석구석을 챙기는 주인 아들. 아직 고등학생이라는데 철이 다 들었다.

 

독일 뒤셀도르프에서 온 하인리히와 니콜라스.

11월 27일에 호주에 들어와 멜번에서 아웃백으로 들어갔다가 이제 브리즈번으로 간다니 우리가 왔던 코스와 정확히 반대로 돌고 있다.  

 

오팔과 크리스탈.

이름도 보석 이름을 따서 짓고 그것도 모자라 엄마는 엉덩이 윗쪽에 두 딸의 이름을 새겼다.

보여주겠다며 바지춤을 내려 나를 당황하게 만든 엄마처럼 아이들도 거침없는 붙임성을 보여준다. ^^

 

산불경고문은 괜히 붙은 게 아니었다.

아침을 먹고 났는데 캠프장에서 보이는 맞은편 산 봉우리에서 정말 연기가 나고 온 동네에 사이렌이 울린다.

소방소가 대기 상태이니 불은 자연발화 되자마자 진화되긴 하는 모양이다. 

어딜 가나 bush fire 얘기 뿐, 사방이 심란하다. 불도 불이지만 이렇게 메마른 동네에서 어떻게들 사는지, 참 용하기도 하다.

블루 마운틴 일대가 입산통제되었으니 계획했던 트레킹 계획도 무산되고......어디 가볼 데 없나 고르던 끝에 Jenolan Cave에 갔는데 

나는 원래도 동굴이 별로인 데다가 중국에서 워낙 으리번쩍한 동굴들을 많이 봐놔서, 크기만 했지 영 심심하게 느껴졌다.

 

호텔급 캠핑장에서 그동안 쌓인 여독을 대강 풀었으니 우리는 또 길을 떠난다. 아웃백의 관문인 캔버라를 향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