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만에 해가 쨍하길래 밀어뒀던 빨래를 돌려 널어놨는데......
사통팔달 통쾌한 제주 바람은 빨래를 잘 말려주기도 하지만 빨래건조대를 뒤집어 흙밭까지 몰고나가 패대기치기도 한다.
참아야 하느니라, 흙물 든 빨래 다시 한번 헹궈 집 안으로 모셔들이고......
이것이 머피의 법칙이 지배하는 7월 둘째주 금요일의 시작이었다.
석면 자재 교환 공사 때문에 한동안 휴관했던 도서관이 이제 문을 열었겠다 싶어서 도서관에 책을 빌리러 나섰는데
평소에 걸어가던 그곳에 왜 차를 끌고 출동을 한 건지 나도 모를 일이다. 게다가
골목을 빠져나오다 생각해보니 책 빌리러 간다는 사람이 대출카드를 안 챙겨갖고 나왔지 뭐냐.
에라, 도서관 말고 걍 어디 드라이브나 갈까 하다가 마음 고쳐먹고 집으로 빽~ , 공손히 카드 챙겨가지고 나왔는데
눈 깜짝할 사이에 대형..(까지는 아니지만 소형이라고도 할 수 없는) 사고!
집앞 골목길에서 큰 길로 나오면 복잡한 삼거리. 그래서 이 골목에서는 좌우 살피며 특별히 조심을 하는데
버스정류장이라 눈치를 본 건지 유난히 좀 튀어나오게 정차해 있던 차의 백미러를 내 백미러가 툭 친 것이다.
그래도 다행인 건 다른 긁힌 데는 없고 그 차 백미러가 180도 돌아가네
근처 공업사에 가서 물어보니 부품 9만원에 공임까지 13만원 내란다. 돈 깨물어먹는 거 참 순식간이군.
그래도 나의 회복속도는 LTE급. 침착하자, 침착하자.... 되뇌이며 아무 일도 없었던 듯 가던 길을 간다.
하지만 텅텅 빈 도서관 주차장.....
맞다, 금요일은 정기휴일이지. .ㅠㅠ 너 도대체 오늘 뭣땜에 차 갖고 나선 거니?
그냥 들어가기도 분하고, 해서 막연히 달리다 보니 수산리 쪽으로 가고 있다.
아참, 지난번에 네비 업데이트 불완전하게 된 거, 시간 나면 다시 들르랬지. 그거나 해서 오늘 차 끌고 나온 보람을 찾자고.
그렇게 간만에 제주시에 나왔는데...... 실패다!
부착식이었던 예전 네비는 SD카드를 꺼내 인터넷으로 직접 업데이트 했지만
아들넘 차는 출고할 때부터 매립식 네비를 장착하고 나왔기 때문에 어째야 할지 몰라 한번도 업데이트 안 한 채 그럭저럭 쓰고 있었다.
허나 나날이 업데이트되는 제주도의 명소와 맛집들을 더 이상 2011년판으로 버티는 건 무리다 싶어서 한 달 전쯤 업체를 찾았다.
헌데 한 시간 가까이 씨름하던 그 아저씨, 업데이트를 하긴 했는데 웬일인지 오디오 프로그램 화면이 안 나온다고
자기가 연구를 좀더 해볼 테니 다음에 시간 날 때 다시 오라고 했던 거다.
이번에도 한 시간을 기다리게 하던 아저씨, 하다 하다 안 되는지 부품을 뜯어보더니
아반떼에 맞는 정품이긴 한데 웬일인지 설정이 액센트로 되어 있단다. 속수무책이라네.
그래도 애초에 있던 프로그램을 업데이트하면 괜찮았을 텐데 메모리가 작아서 포맷을 하고 업데이트를 해서 그런 것 같다고,
하지만 새 걸 사넣기 전엔 어떻게 해도 초기설정을 바꿀 방법이 없단다.
하드웨어도 아니고 소프트웨어인데 정말 방법이 없는 걸까? 하지만 전문가가 안 된다는데 암것도 모르는 내가 뭘 어떻게......
음악 곡목 안 뜨면 어때. 운전하면서 화면 보는 건 위험하다고. (참 포기도 빠른 나.. ㅋㅋ)
어째 오늘은 나가는 발걸음마다 허탕이냐.
이대로 돌아갈 순 없다 싶은 억하심정으로 궁리하던 끝에 인근 이마트로 고우!
동네 하나로마트에서는 못사는 샐러드용 딱딱한 치즈 같은 걸 사간다면 나름 오늘 외출의 의미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헌데...... 주차장 앞의 현수막, '오늘은 재래시장 가는 날'이란다. 컥!
돌아오는 길에 하늘이 너무 예뻐 사진 한 장 남겨두자 하고 폰을 꺼냈더니 밧데리가 다 됐네.
멋진 장면은 딱 그 순간 뿐. 비슷한 장면이야 뒷날을 기약할 수 있지만 똑같은 장면, 똑같은 감동은 절대 복제할 수 없는데......
오늘은 태풍 전야의 '특별한 하늘'이었단 말이다. ㅠ.ㅠ
이래도 저래도 풀리지 않는 개운찮음을 애써 웃어넘기며 돌아왔더니 헉, 이건 또 뭐냐......
겨우 두어 시간 자리를 비웠을 뿐인데, 날도 저물지 않았는데...... 내 주차 자리에 얄미운 '모'짜가 들어와 있다.
이 자리로 말할 것 같으면 이 골목에서 가장 편안하고 안전한 공간으로서, 황송하게도 앞집 할아버지가 직접 점지해준 자리다.
헌데 언제부터인가 이 자리에 '모'짜를 단 새 차가 내 차가 자리 비운 틈에 자꾸 들어온다.
그것도 모자라 그 자리에 무려 우유팩(!)으로 자리를 잡아놓기까지......어디서 굴러온 돌이 박힌돌을!! (나 박힌 돌...ㅋㅋㅋ)
사실 조금 걷기는 해도 동네에 차 댈 데는 많다. 하지만 그 자리가 내 자리임을 확정하기 위해서 나도 질세라, 웬만하면 차 안 빼려고 신경을 곤두세우다가
유치한 신경전 대신 몇 걸음 더 걷는 대범함으로 전환한 지는 이미 오래.
헌데 오늘 같은 날은.... 이 냥반이 어디서 내가 차 빼기를 기다리며 지켜보고 있었던 거 아냐? 싶은 히스테리가... ㅋㅋㅋ
뭐 하나 되는 일 없는 하루의 마무리로 이보다 더 완벽할 수 있을까.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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