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살이/애월리 四季

지꺼지게 놀아보게~ 1 : 제주도립교향악단 신년음악회

張萬玉 2015. 7. 24. 07:58

적지 않은 예술가들이 이주해 있는 제주에 살다 보면 그들의 일상인 듯한 예술세계를 들여다볼 기회가 자주 있다.

도립미술관이나 현대미술관 등 입장료 저렴한 상설전시장을 비롯, 커피만 마시면 얼마든지 즐길 수 있는 갤러리 까페가 널려 있어

미술 문외한이었던 이 아줌마도 잦은 눈요기 끝에 취향에 따라 골라 보는 경지(!)에 이르렀으니 이런 행운이 어딨겠는가. 

 

무대공연도 그렇다. 좋아는 하지만 서울에 있을 때는 너무 멀고 너무 비싸 쉽사리 가지 못했었는데

이곳에선 기타 지판 잡는 소리까지 들리는 작은 무대 바로 앞에서 공연자와 같은 즐거움을 쉽게 나눌 수 있다.

입장료도 만원, 오천원, 가끔은 무료인 착한 공연들이라, 혼자 있는 시간이 길어지고 있다고 느낄 때 친구네 집 들르듯 휘리릭 들르곤 한다.  

 

이런 공연이나 전시회 정보를 날라다주는 이주민 까페 자체도 가끔 이벤트를 진행하곤 한다.

등산 혹은 걷기 번개, 낚시나 스쿠버 번개, 음악감상회 번개, 개업축하 번개 등등.....

이런 번개에는 낯 가리느라고 (ㅋㅋ) 거의 참석을 안 하지만 딱 내게 맞춤한 모임이 있으면 슬쩍 끼어들어갈 준비는 돼 있다.  

올해 1월 '김광석 다시부르기' 콘서트를 시작으로 http://blog.daum.net/corrymagic/13754914 

이러저런 이벤트에 참석했던 기록들이 사진디렉토리에 남아 있길래 훗날의 기억을 위해 간략히 포스팅해둔다.

 

올해 1월초, 그러고 보니 벌써 반 년 전 얘기네.

제주살이 정보를 얻기 위해 가입한 까페에서 한 회원이 전 회원을 대상으로 초대권을 날려주었다.

1인 2매라고 제주 사는 친구를 불렀더니, 피아노 치는 아들을 길러본 친구라 좋아라 나서준다. 

레퍼토리는 무소르그스키의 민둥산의 하룻밤과 전람회의 그림, 차이코프스키 피아노협주곡 1번,

차이콥스키 1번은 어릴 때 집에서 오빠들이 자주 틀었던 곡이고 무소르그스키는  여고시절 음악감상반 활동 할  때 몇 번 들었던 곡. 

모두 나를 그 시절로 돌려놓기에 충분한 그리운 곡들이었다.

특히 무소르그스키의 곡을 관현악의 생연주로 듣다 보니 숨은그림찾기 하듯 연주와 악기를 짝지으며 감상하는 즐거움이 있었다.

익숙한 테마와 변주가 되풀이되는 것도 좋았고 차임, 실로폰, 징 소리가 만들어내는 슬라브적인 느낌이 참 좋았다. 

더 자세한 곡 해설은 http://blog.daum.net/dibae4u/13404966

 

차이코프스키의 협주곡 1악장은 엄마가 좋아하시던 곡. 듣는 내내 엄마 생각을 했다.

2악장 현악기들이 깔아주는 피치카토 위에서 피아노와 플룻이 다정하게 주고받는 대목은 더없이 달콤했고

세 박자가 도도한 강물처럼 흘러가는 3악장은 지휘자와 연주자들의 젊은 기운을 흠뻑 전해주었다.

앵콜을 받은 피아니스트 조재혁은 화려한 '라 캄파넬라'로 청중들의 열렬한 환호에 답하고......

곡을 듣는 순간, 어 저거 뭐지? 너무나 익숙한 곡인데 생각이 안 나... 집에 돌아와서도 자다 깨다 궁금증을 떨치지 못하고

결국 다음날 아침 언니에게 전화해서 잠에서 덜 깬 목소리로 '미미미미레도 시도레 미미파미레도시 라도시라미~' 생음악을 연주했더니

언니가 까르르 넘어가더니, 자기도 한때 귀에 딱지 앉도록 들었던 건데 곡목이 도무지 생각 안 난단다. 

바이올린 곡이었는데 피아노로 편곡해서 더 유명해진 곡이라는 데까지 접근해놓고 '맞아, 맞는데....' 안타까워 하는 늙은 자매들.

잠시 후에 언니에게서 문자가 왔다. 리스트의 곡을 파가니니가 연주했다나. 그럴 리가~ 그 반대겠지. ㅋㅋㅋ

 

제주시가 지은 제주아트홀은 서울로 치면 예술의 전당쯤 되는 공연장이다.

주로 서울에서 내려오는 유명 가수들의 콘서트나 연극 등을 (제값 받고) 공연하지만

두어 달에 한 번쯤은 도립교향악단이나 도립합창단 등 제주 음악인들이 도민들을 위한 착한 연주회를 한다.

상하이로 막 이주했을 무렵 (지금의 대극장이 생기기 전) 초라한 상하이음악청에서 매주 토요일 상하이시립오케스트라의 연주회가 열렸었다.

세계적인 기량의 오케스트라 연주를 단돈 20원에 감상할 수 있다니...... 감동하며 부지런히 드나들던 그 때처럼, 제주에서도 그러고 싶었는데

어쩌다 보니 신년음악회 이후 한 번도 안 갔다. 역시 불러주는 친구가 필요한가 보다. ㅠ.ㅠ

규모는 작지만 푸른 숲에 둘러싸인 이곳, 더 자주 와야겠다. 공연보다 일찍 와서 산책도 하고 길 건너에 있는 한라도서관에도 들르고......

콘서트도 콘서트지만 이 외딴 섬에서도 예술의 숲에 안길 수 있다는 사실 자체로도 흡족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