란저우까지 와서 유가협 댐과 병령사 석굴을 못 보고 가는 것이 아쉽긴 하지만...
갈길이 멀어 하룻밤이라도 이동하는 시간을 줄여야 하는 우리로서 란저우와의 인연은 반나절로 다한 듯하다. 황하강변 구경을 마치고 이른 저녁을 먹고 나니 가욕관행 기차를 탈 때까지 두 시간 정도 남는다. 가이드는 부근에 재래시장과 상가가 있으니 각자 놀다가 9시 반에 집합하란다.
뭘 딱히 살 것도 없지만 그보다도 종일 황토먼지 뒤집어쓴 얼굴과 손발에 물이라도 축이고 싶은데... 줄 서서 기다려가지고 고양이세수로 끝내야 하는 기차 세면실, 게다가 내일 밤까지 또 흙먼지와 땡볕속을 헤맬 생각 하니 잠깐이라도 샤워할 만한 델 찾아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
그러나 이 짧은 시간에 낯선 도시 어딜 가서 사우나를 찾나?
궁리끝에 버스 바로 뒷자리에 앉아 있던 내외를 꼬였다. 요 옆 호텔 방을 하나 빌려 샤워만 하고 나오면 어떻겠냐고.... 하룻밤에 180원인데 넷으로 나누면 45원씩이다.
좋은 생각 해냈다고 무지 좋아한다. 비록 만난 지 서너시간밖에 안 된 사이지만 두 쌍의 중년부부는 '샤워'라는 목표에 당장 의기투합하여 나란히 한 방에 들었다. 상쾌통쾌하게 차례차례 샤워를 하고(낯선남자 앞에서 수건으로 머리까지 말려가며) 맥주까지 한병 나눠마시고 나오니 크~ 밤바람이 얼마나 시원하던지....
딱딱한 침대칸 풍경. 빈 침대가 내 자리다. 남자들은 이층 삼층으로 올려보냈다.
우리를 노려보고 있는 이 아줌마는 대만계 미국인이다.
(설마 이 아줌마가 내 블러그에 들어와보진 않겠지? 허락없이 초상권을 침해해서 미안하지만 딱딱한침대칸을 보여줄만한 사진이 이것밖에 없다)
침대 발치쪽으로 좁은 복도를 사이에 두고 손바닥만한 탁자와 의자를 붙여놓아 누워있기 싫은 사람들이 이용하도록 해놓았다. 이 열차도 상해-북경 간 열차만큼이나 깨끗하고 편리하여 하룻밤 푹 자는 데는 부족함이 없다.
종일 땡볕에서 고단했는지 그렇게들 좋아하는 포커도 안 치고 모두 일찍 잠자리에 든다(이 사진은 뚠황에서 트루판으로 이동할 때의 사진... 밖이 환한 걸 보니...)
아침 7시 반에 지아위관 역에 도착하니 역 광장 상가 간판에 그려진 김희선(근거없는 나의 추측이다 ^^ )이 제일 먼저 날 반겨준다.
인구 18만의 이 작은 도시에는 1958년까지 아무도 살지 않았다고 한다.
만리장성 서단을 지키기 위해 명나라 때 성을 세웠던 이후로...
그러다 중국정부에서 대규모 국영공장인 주천철강(이 지방의 옛이름이 주천이다)을 세우고 이 공장을 돌리기 위한 인원들을 이주시키면서 도시가 형성되었다고 한다. 이 대목에는 우리로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스토리들이 많이 존재한다.
갓 결혼한 남편이라 해도 조국의 부름(!)을 받아 이 벽지로 이주하면 (신중국건설의 사명감으로 자원한 지식분자들도 많았다고 한다. 소위 下放이다.) 돌아가기 쉽지 않아 5년, 심지어 10년 가까운 세월 동안 가족 한번 만나지 못하는 경우도 있고 아예 이곳에 눌러앉은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한다. (이전에 사람이 없었다고 하니 이곳 주민들 대부분이 당시 이주한 이래 이곳에 눌러 앉은 사람들이라고 보면 된다.)
'거부하면 어떻게 되는데?' 하고 어리석은 질문을 하니, 그러면 糧票도 布票도 못받고 집도 빼앗기니 살 도리가 없기도 하고, 그보다도 당시의 고양된 분위기로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단다.
뚠황으로 가는 길에 경유하는 도시이지만 이 도시에도 볼거리는 있다.
지아위관시 제일 좋은 호텔 음식점이라지만 대단히 시원찮은 아침을 먹고, 우리는 만리장성의 서쪽 끝인 지아위관 성채를 보러 떠난다. 10분도 안 걸려 시내를 벗어나니 길 양쪽으로 광활한 사막이 펼쳐지고 왼쪽으로는 흰눈을 덮어쓴 치리엔(麒連)산맥이 끝없이 병풍을 친다.
허허벌판에 서 있는 공장건물들
치리엔산맥의 녹아내린 눈을 수로로 이끌어 저장해둔 성루 입구의 호수.
호수쪽에서 바라본 성루
지아위관 성루는 1372년 만리장성 서단을 지킬 병력을 주둔시키기 위해 지어졌다.
성은 두 겹의 벽으로 둘러싸여 있고 바깥벽 동서쪽으로 성문이 나 있다. 사진은 성루 서쪽 입구.
동쪽문의 이름은 光華門이다.
옆으로 난 계단을 통해 성벽 위로 올라가면 끝없는 사막이 눈앞에 펼쳐진다.
가는 길에 만리장성 끝부분을 볼 수 있을까 했는데 차가 중간에 서지 않는다니... 혹시나 하는 아쉬운 마음으로 동쪽서쪽을 열심히 둘러보았다.
안쪽 성벽 위에서 내려다본 군사들의 숙소
외성벽과 내성벽 사이. 햇볕이 따가워도 그늘로 들어가면 서늘하다.
남들 안 하는 박물관 구경하다가 집합시간에서 30분이나 늦어버린 우리 내외... 따가운 눈총에 눈을 내리깔고 '不好意思'를 연발.... 우리가 원래 약속 잘 지키는 범생이들인데, 사막 개간의 역사에 정신을 팔다가 그만...ㅋㅋ
아무튼 버스는 다시 서쪽을 향해 달린다.
가도가도 아무것도 없는 사막풍경에 지루해진 사람들은 잠이 들고... 꼭꼭 닫은 창 어느틈으로 들어오는지 모르는 지독한 황토먼지로 버스 안은 매캐할 지경이다.
양관 못미쳐서 개발중인 유전 발견.
이것은 또 무엇인가.. 난데없이 사람가죽으로 만든 북이라니.
사막을 달려가던 도중 볼일을 위해 잠시 멈춘 곳에 교만고성 박물관이라는 문패가 걸려 있었다.
강희제가 꿈에서 이 자리가 아주 길하다는 게시를 받아 이곳 관리에게 명하여 자금성만한 성을 지으라 했더니, 간뗑이가 큰 陳모라는 관리, '설마 황제가 이 오지까지 직접 와서 확인하랴..' 하면서 공금을 무지막지하게 횡령하고 읍성보다 더 작고 볼품없는 성을 쌓았단다. 그러나 뜻밖에 직접 납신 강희제... 분노하여 이 탐관오리의 가죽을 벗겨 북을 만들어라.. 명하였단다.
여기는 말이 박물관이지 좀 심하다. 사람가죽 북 말고 있다는 것이 석굴 벽화 10여점인데 모두 복제품이다. 성터라고 있는 것이 5미터 정도 되는 토담벽... 그게 강희제 때 지은 건지 1년 전에 왕씨가 지은 건지 알게 뭐람.. 해설이라고 나서서 해주는 얘기도 어째 순 엉터리같다. 그러면서 입장료를 20원씩이나 받아먹다니... 부아가 나더라.
박물관 좋아하는 우리 내외와 몇명만 들어갔다가 들어가지 않은 다른 사람들의 쯧쯧 어린 시선을 받았다. 오늘은 박물관 때문에 수난이 많은 날이다.
박물관장의 관저.
화풀이로 화장실 사진 올릴까 하다 참는다.
버스는 또 끝없는 사막을 달린다.
메마른 사막에 힘겹게 돋아난 풀들은 낙타의 먹이란다.
막 석양이 물들기 시작한다. 저녁 7시가 넘었다.
이 허허벌판의 유일한 희망으로 느껴지는 公路.
드디어 하늘을 불사르며 해가 넘어간다.
서역에서 보는 일몰에는 특별한 느낌이 있다.
* * * * * * *
지아위관을 떠난 지 8시간 반, 밤 10시 반이 되어서야 겨우 뚠황에 도착했다.
도로 수리 때문에 80km를 돌았다고 한다.
졸린 눈 비비며 간신히 저녁 한술 뜨고 해산. 내일은 새벽 다섯 시 반 출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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