컴퓨터 하드를 정리하다가 한참 빨빨거리고 다니던 흔적들을 보고 있자니 만감이 교차한다.
불과 2년 전의 일인데 내 기억 속의 시간들은 20년 전의 시간들처럼 희미해져가고 있구나.
그래도 그게 나름 의욕적으로 준비했던.... 세계여행 5개년 계획의 3차년도 여행이었는데 말이지.
그리고 여행에서 돌아오면 곧 식음을 전폐(!)하고 여행기를 올리곤 했는데 말이지...
허나 그 여행 말미에선 돌아오자마자 중국으로 가는 이삿짐을 싸게 되었고,
중국에 가보니 다음 블러그가 막혀버렸고, 한국으로 돌아와서는야.. 뭐 엄두도 못 냈고
설상가상으로 에딘버러에서 여행노트도 잃어버렸지, 사진 보관해둔 이미지 스토리지 장치도 고장났지,
거금을 주고 복원까지 했으나 열어보니 내가 노망이 들었는지 사진 사이즈를 엽서 만하게 맞춰놓고 찍었더군.
이래저래 김이 새는 바람에 걍 없었던 일인양 묻어두자 하고 살았는데
모로코 구간을 함께했던 친구로부터 정말 오랜만에 안부 메시지가 왔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 친구 사진도 나의 여행기와 함께 기억 저 편에 묻어뒀던 거였다.
내가 찍은 거 말고는 그 구간 사진이 한 장도 없을 텐데....
모로코 구간의 첫동네 샤프샤우웬, 바닷물빛에 잠긴 골목길에서 모로코 청년과 결혼식(ㅋㅋ!)을 당하던 그녀의 파안대소가 오랜만에 나를 웃겼다.
요즘처럼 만사가 심드렁할 때야말로 그 많은 사진을 찍게 했던 순간들의 감흥을 되살려낼 타이밍 아닐까.
그녀에게 보내줄 모로코 사진들을 정리하면서 다시 그때 기억들을 복원할 마음을 먹게 되었다.
또 다른 계기는... 엊저녁 친구 집들이에 갔다가 자리를 함께하게 된 우리 아들 또래의 귀여운 친구들.
내 친구가 남미여행길에서 만나 시끌벅적 어울렸던 일행들인데 지금까지도 만남을 이어가고 있는 모양이다.
나와는 일면식도 없는 친구들이지만 남미여행, 그리고 여행이라는 공통의 화제,
뿐만 아니라 몇 개 같은 숙소들을 거쳐왔다는 인연으로 해서 몇년 지기라도 되는 양 금세 가까워졌고
오랫동안 잊고 있던 아드레날린 세례까지 흠씬 받았다. ㅋㅋ
그래서.... 다시 엄두를 내본다.
한동안 멍때리며 산 탓에 글은커녕 말도 잘 안나오는 요즈음, 당시의 세세한 감정들까지야 복원하기 어렵겠지만
사진이라도 정리해두면 잊었던 활기가 되살아나줄까, 기대하며
오랜만에 여행 카테고리를 클릭해본다.
곧 순이가 옵니다만 기대는 하지 마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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