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로 가는 길(~2014)/일상

부모의 눈으로 본 옥탑방 고양이

張萬玉 2012. 6. 22. 12:01

 

 

# 이 나이에 웬 2030 연애코드?

 

친구가 어느날 저녁에 신사동으로 날 불러낸다. 딸네미가 공짜티켓 생겼다고 (아마도 이벤트 같은 데 응모해서 얻어낸 거?) 꼭 만옥아줌마랑 가라고 지정해줬다고...

옥탑방 고양이가 뭐라고 가르랑거릴지 별로 궁금하진 않았지만 오랜만에 친구랑 수다나 떨 생각으로 나갔는데

예상과 달리 꽤나 달콤쌉싸름한 맛에 이끌려 어느새 2030 연애코드에 푹 빠져버렸다. 

2000년도 초반에 인터넷 소설로 발표된 원작소설이 2003년인가에 드라마로 각색되어 큰 인기를 끌었고, 다시 이렇게 연극으로, 만화로 이어지고 있는 걸로 보면

인생의 진로와 그 속에서 위치지어지는 연애라는 문제는 아무리 되풀이해도 끝이 나지 않는 화두임에 틀림없다.    

 

드라마로 방영되었을 당시에는 '혼전동거' 문제를 제기했다고 해서 핫 이슈가 되었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는 10여 년이 흘렀다.

지금도 '혼전동거'는 여전히 부모들의 걱정거리이긴 하지만

그보다는 오히려 '자리 못 잡고' '자리 잡기 전에는 결혼할 꿈도 안 꾸는' 애들에 대한 걱정이 더 큰 걱정거리인시대가 되었다.    

 

한 아이는 드라마작가가 되겠다고 좁아터진 공모전의 문을 두드리고 있다. 

다른 아이는 아버지가 열어주는 길을 마다하고 '의미있는 자신의 길'을 가기 위해 집을 나왔다.

참으로 멀기만 한 꿈과 현실 사이의 괴리는 젊은이들에게 쉽게 해답을 내어주지 않는다.

좌절과 외로움의 수렁 앞에 선 불안한 청춘들은 과연 무슨 힘으로 살아가는가.  

연극은 이런 힘겨운 스토리에 따뜻한 페이소스와 청춘 특유의 발랄함을 양념하여 맛갈나게도 버무렸다.   

 

88만원 세대의 가치관과 연애풍속도를 부모들은 과연 얼마나 이해하고 있을까.

연극은 완고한 부모들조차도 공연 내내 공감의 웃음을 터뜨리게 만들지만(청춘의 낭만은 전 세대를 아우르는 소재 아닌가.. ^^)

자기 자식들이 실제로 (꿈을 이루겠다고) 벌이고 있는 '뻘짓거리'를 목도했을 때 그 미소는 아마 당장 근심걱정으로 굳어버릴 게 틀림없다. 

이미 머리가 굵어 자식들이 부모 뜻대로 움직여주지도 않지만, 문제는 부모의 수중에도 뾰족한 해답이 없다는 것이다.

모자라는 아이는 모자라는 아이대로 잘난 아이는 잘난 아이대로 자기 앞의 생은 녹록치가 않다.

절대적으로는 치열한 경쟁 때문이기도 하지만, 우리 세대 같지 않게 자의식이 강한 아이들로 자라나 욕심도 많고 뵈는 것이 넘쳐나는 세상에서 참조할 것도 많고 

사회 경험이 적으니 불합리, 부조리와 타협하기도 힘들어하고 등등...... 그래서 자신과의 싸움을 더 버거워하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결혼? 안중에도 없다. 완곡하게는 준비가 안 됐다고도 하고 솔직하게는 엄두가 안 난다고도 한다.  

 

외로우니까 옆에 있는 사람 붙잡아서 의지하며 정들며...... 연극은 그렇게 끝난다.

맞는 얘기긴 하다. 어차피 인생이란 게 인연으로 엮어지는 스토리 아닌가. 살 만큼 살아본 사람들은 그걸 알지.

하지만 한참 이상을 좇고 이상형을 꿈꾸고 자신만의 인생을 만들어볼 욕심을 포기하지 않는 젊음에게 그렇게 들이대려니 웬지 섭섭한 것도 사실.

 

    원작 소설이 어땠는지 모르겠지만 각색 참 깔끔하고 센스있게 했더라.

                                                      쿨한 척 버티는 두 사람의 마음을 대변해주는 뭉치와 겨양이, 참 귀엽더라. (장난감 좇는 시선, 꼬리 흔들기, 하악질...^^)

           

  

# 옥탑방 고양이, 그 후

 

실컷 웃고 박수치고 일어선 것까지는 좋았는데, 돌아오는 전철에서 손이 허전하다는 걸 깨달았다.

가는 길에 서점에 들러 구입한 책 두 권을 좌석 아래 두고 온 것이다.

두 권 중 한 권은 절판되어 구하기도 어려운 책이라 이튿날 다시 신사역 2번출구로 나갔는데 

상영 두 시간 전에 도착한 덕분에 뽀나스! 받았다.

어젯밤에 본 선남선녀들을, 그것도 쌩얼로 만난 것이다.

특히 고양이 뭉치 역뿐 아니라 택배원, 열쇠수리공, 여주인공의 게이 친구, 여주인공의 아버지, 주인집 아저씨 등등 멀티플레이로 열연하면서

연극이 시작되기 전 능청스러운 이벤트를 펼쳐 관객들을 완전히 사로잡던 재주꾼 류지훈씨...

너무나 반가웠다.(헌데 웬지 많이 피곤해보였다. 그 역시도 그 자리에 서기까지, 그리고 앞으로 가야할 길이 먼 옥탑방 도련님?)   

타블로 판박이 박성훈씨와 웬지 내 친정조카(그 애도 한때 고달픈 방송작가 생활을 했었다)를 떠올리게 한 김두희씨, 깜찍발랄한 겨양이 정현주씨....

햇빛 아래서 보니 모두 우리 아들의 친구들이나 만난 양 괜히 안쓰럽고 기특하다.

모두모두 언젠가는 원하는 무대에서 원하는 작품 마음껏 골라 하는 큰 배우들로 성장할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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