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도 조각공원에서 만난 여인.
그녀의 이름은 '공허'였다.
작가는 도대체 어째서...그래서 어쩌자고...
그녀의 몸에 저리도 큰 구멍을 뚫어놓았을까.
남편을 보낸 뒤에 배겨내야 했던 감정은 슬픔이라기보다 공허 쪽이었다.
어디로 잠적해버리거나, 최소한 몇박며칠이라고 세지 않는 기나긴 잠 속으로 빠져버리고 싶은 마음뿐...
삼우제 바로 다음 날부터 두 팔 걷어붙이고 본가 대청소에 돌입한 것은 그 유혹과 싸우기 위해서였다.
일 년 넘게 아들에게 맡겨둔 집구석 치우는 것도 만만찮은 일이었지만
넓지도 않은 본가에 중국에서 실어온 수동집 짐까지, 두 집 살림을 합치려니 닥치는 대로 치워야 했다.
본가 정리 마쳐놓고는 수동으로 건너가 남편의 유품들을 위시해서 또 한바탕 치워댔다.
잘 가거라, 행복했던 나의 30년 결혼생활이여....
내가 언제 떠나더라도 뒤꼭지 땡기지 않을 만큼 최소한의 생존장비만을 남겨버리고 싶은 히스테리가 발동하기도 했지만
아직은 아들이 딸린 '가정'의 형태가 엄연한데.....타이르며 꾹꾹 눌렀다.
최대한 쿨하게, 일사천리로 주변정리를 끝내야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사까지 마치고 나니 가슴으로 바람이, 본격적으로 숭숭 들어오기 시작한다.
불면증과 함께 이 나이까지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했던 위경련까지 합세하여 나를 아주 바닥으로 끌고갈 기세다.
어떡해야 기운 펄펄하던 예전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비록 未亡人(마땅히 죽어야 했으나 아직 죽지 못한)이라고 불리는 신세가 되었지만, 아직 내겐 살 날이 너무 많은데.....
남편도 명랑발랄 못하면 못사는 나를 너무 잘 알고 있으니, 하루빨리 기운 차리기를 바랄 것인데....
헬스에 등록했다. 등록도 모자라 큰맘 먹고 개인코치까지 신청을 해두었다.
정처없이 떠다닐 게 분명한 마음에 압정이라도 질러둬야 했다.
다행히 일꺼리도 생겼다. 남편이 다니던 회사에서 일주일에 두 번 중국어를 가르치라고 한다.
이 두 가지 안전장치에 힘입어 꾸역꾸역 살고 있다.
남편이 간 지 어느새 두 달이 지났다.
어제는 눈부신 햇살 아래 갑자기 피어난 개나리덤불이 작년 이맘때를 떠올려 그만 잠깐 눈물짓고 말았지만
맹세코 마음에 뚫린 구멍 같은 건 들여다보지 않으려고 한다.
이제 무슨 힘으로 내 인생을 견인해나가야 할지에 대한 근심도 궁리도 접어두려고 한다.
머리는 비우고 몸은 부지런하게.... 우선은 내년 이맘때의 나를 향해 한발 한발 걸어갈 꺼다.
'내게로 가는 길(~2014) > 일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自主, 自助, 自愛 (0) | 2012.09.09 |
---|---|
2012년 2/4분기 안부 (0) | 2012.07.12 |
부모의 눈으로 본 옥탑방 고양이 (0) | 2012.06.22 |
유럽 여행 복원작업 시작 (0) | 2012.05.27 |
괭이란 녀석... (0) | 2012.05.24 |